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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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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 사진 및 영상자료 추가가 지속됩니다.

서부전선의 이상한 전쟁 (사진복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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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지도상에서 사라진지 3개월 후인 1940년 1월 9일.

한 대의 독일공군 Me-180「타이푼」정찰기가 벨기에의 「뮤즈」강변에 불시착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헬무트 라인베르크」소령은 독일군 합동참모 본부에서 근무하는

작전 장교이며, 다른 한명은 조종사 「호헨만스」소령으로 밝혀졌다.

 

 무단국경 침입혐의로 이들을 심문한 벨기에 군은 이 두명의 장교가 독일도시 「쾰른」으로 비행하던중에 

조종미숙으로 하늘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연료가 떨어져 벨기에 내의 영내에 불시착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국토가 좁고 국경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중부유럽에서 이런류의 사고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라인베르크소령이 소지하고 있던 한건의 서류였다.

추락한 기체에서 기어나온 두 독일장교는 황급히 이 서류의 소각을 시도했지만, 한발 먼저 달려온 벨기에 

국경 수비대원들에 의해 절반쯤 불탄 채로 압수된 그 서류는 실로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일군이 벨기에와 네델란드를 침공하기 위한 세부계획이 소상하게 기록된 작전 계획서였던 것이다. 

벨기에 정보기관은 그것이 역정보를 퍼뜨리기 위한 속임수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그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도 없었다.


벨기에 정부가 뒤집어졌다. “전쟁이다! 곧 독일군들이 몰려올 것이다.”

이 소식은 곧 베를린의 합동참모 본부에도 전해졌고 히틀러 총통은 격노하여 펄펄 뛰고 있었다.

폴란드전이 채 끝나지 않았던 작년 9월말부터 공들여 준비해 온 작전계획이 두 명의 멍청한 녀석들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



[▲<오늘날 '더이상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이란 의미를 담은 숙어가 되어 버린 프랑스의 마지노선. 스위스 국경에서 벨기에 국경에 이르는 총 연장 140Km의 이 거대한 요새는 어떻게든 전쟁의 재발을 막아보고자 하는 의지의 결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군의 방심과 전략적 오판을 불러오는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만다.] 



 

[▲체임블린 수상과 영국군 병사들. 1차대전 직후에 단행된 군비축소로 인해 1930년대말의 영국군은 도저히 다시한번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약체화되어 있었고, 그나마 중동, 인도 등지에서 일어난 식민지 독립운동에 휘말리는 바람에  유럽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과감하게 대처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미 수백년 전부터 독일이 끊임없이 추진해온 일관된 정책은 동방진출이었다.

늘어나는 인구와 농토, 시장확보를 위해 “동쪽으로!”를 부르짖어 왔던 만큼, 힘을 기른 독일이 가장 먼저 체코와 오스트리아, 폴란드를 병합시킨 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쪽이라면 전혀 애기가 다르다.―유럽대륙에서 유일하게 독일에 견줄 수 있는 강대국 프랑스가 국경을 

마주 대고 있는데다, 거기서 도버 해협을 건너면 영국이다. 이들과의 전쟁은 민족의 존망을 건 한판 승부를 의미하며, 

또 독일은 이미 1차대전에서 이들에 의해 쓰디쓴 고배를 마신 경험도 가지고 있다.


서쪽으로 국경을 마주 대고 있는 벨기에, 네델란드, 록셈부르크―이른바 베네룩스 3국―은 변변한 군대조차 가지지 

못한 작은 나라들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줄곧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독일을 견제해왔고, 

사실상 프랑스 본토에 대한 공격이나 다를 바 없는 이들 나라에 대한 침공을 프랑스가 

가만히 앉아서 지겨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히틀러가 처음 서유럽 침공계획을 발표했을 때 독일군의 고위 지휘관들이 그토록 경악했던 이유였고, 

또 이런 우려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장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히틀러가 밀어부친 그 공격의 포문이 막 열리기 직전에 작전계획서가 

벨기에 군에 노출되고 만 것이다.

계획을 상당부분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결국 1월 중순으로 예정되었던 공격 개시일은 5월로 늦추어 졌지만, 

이제 동쪽을 모두 집어삼킨 독일군이 서쪽을 향해 달려들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기정 사실이 되어 버렸다..


 

☞지츠크릭―앉은뱅이 진영


 이 무렵 프랑스와 영국은 최소한 이론적으로 본다면 명백한 독일의 적국이 되어있었다.이 두 나라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이틀 뒤인 1939년 9월 3일에 이미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해놓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연합국의 태도가 좀 어정쩡했다.


폴란드가 독일 전차의 케터필러 유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즉시 군대를 폴란드에 파견하는 적극적인 대응을 전혀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는 전시동원령을 선포하여 병력을 500만으로 늘리고 독일과의 국경에 경비를 강화했지만 그 이상은 한발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놀란 것은 독일군이었다.

폴란드로 밀고 들어감과 동시에 프랑스가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 것을 염려하여 오래전부터 프랑스 국경에다 「지크프리트 라인」이라 불리운 방어선의 건설에 착수했고, 그러지 않아도 부족한 병력의 일부를 떼내어 배치해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서부 국경선은 지극히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요컨데 "독일놈들이 먼저 총을 쏘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 프랑스의 방침이었고, 독일의 입장에서는 프랑스를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이런 서로의 사정은 결과적으로 "포성없는 전쟁"이라는 기묘한 상황을 불러왔다.

프랑스군은 두 나라의 국경선을 이루고 있는 라인강의 교량을 폭파하기에 앞서 그 사실을 정중하게 독일측에 통보해 주었고, 독일군은 또 포탄 한발이 프랑스 영내로 발사되자 확성기를 통해 "방금 쏜 포탄은 고의가 아니라 병사들의 실수로 인한 오발" 이었다고 정중한 사과를 보내오는 식이었다.




[▲마지노선의 '아득했던' 1939년 겨울. 지하요새에 근무하는 프랑스 병사들이 군의관의 감독아래 태양등을 쬐는 것으로 일광욕을 대신하고 있다.]


[◀서부전선에 배치된 프랑스군 보병소대가 어느 촌락앞을 지나고 있다. 겉으로는 500만의 병력을 가진 세계 최대의 육군국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로부터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이 병사들의 복장과 무기에서 이들이 강력한 독일군 기계화부대와 맞붙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대신 아연 활기를 띤 것은 양측의 선전 공세였다. 독일군의 확성기는 연일 "전쟁이 시작된다면 영국이 잃을 것은 병력뿐이지만, 프랑스는 온 국토가 바로 전쟁터가 된다."며 두 연합군의 분열을 부추겼고, 프랑스 역시 "서쪽으로 단 한 발자국 만 내디뎌도 호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얼음장을 놓았다.

이처럼 지그프리트선에는 총성대신 양측의 확성기만이 왕왕대고 폭탄대신 선전삐라만 바람에 날아 다녔다. 그무렵 지그프리트 요새선은 미처 완성되지 못한채로 건설작업이 진행중이었고 배치된 병력도 프랑스군에 비해 훨씬 빈약했지만, 사기만큼은 왕성했다.

동쪽의 폴란드 전선에서 들려오는 전우들의 연전연승 소식은 이곳 서부전선의 독일 병사들을 고무시켰고,그곳에서「블리츠 크릭:전격전」에 비해 여기는 「지츠 크릭:앉은뱅이 전쟁」을 하고 있다고 툴툴거렸다.그에 반해 영.불 연합군 병사들은 기묘한 전쟁을 '조랑말 전쟁'이라 불렀고, 제발 전쟁이 더 이상 확대되지 말고 이런 상태로 슬그머니 끝나주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마지노 선이 있으니까.....  이무렵 프랑스는 정말 전쟁을 하기 싫었다. 히틀러의 야심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정말 최악의 상태가 오지 않는 한 다시한번 독일과 정면으로 맞붙는 전면 전 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장교들과 고위장성들은 그 악몽같은 서부전선의 참호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병사들이 철조망으로 메워진 황무지를 향해 달려나가면 적군의 참호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고, 그 날 오후에는 또 정반대 상황이 똑같이 재현되는 식의 그 끝없는 소모전의 낭비와 비 능률성, 그리고 참혹함을 몸서리 쳐지게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뭘 모르기는' 영국군도 마찬가지. 독불국경으로 파견되는 이 대륙 원정군단 병사들은 자기들이 도착하기만 하면 독일군이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베를린으로!", "아돌프군, 오리가 간다" 따위의 낚서가 가득한 기차를 타고 런던의 빅토리아 역을 떠나고 있는 병사들. 하지만 이들은 곧 뜨거운 맛을 보게 된다.]


[◀◀전쟁이라기 보다는 흡사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연상케 하는 서부전선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진이다. 독불국경의 어느 과수원에다 의자까지 갇다놓고 한가하게 않은 채로 경비에 임하는 군기빠진 프랑스 병사.]



 그리고 그런 비극적인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가 바로 「마지노」선이다.

어차피 프랑스가 먼저 전쟁을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면 견고한 방어태세야말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수단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 결과 2억달러가 넘는 비용과 7년의 세월을 걸쳐 독불 국경선에 구축한 총 연장 140Km의 이 요새는 그야말로 프랑스군의 희망이며 자존심이었다.

맨 앞줄에는 대전차호가 파여 있고, 그 뒤에는 대전차포와 기관총 진지가 두께 30cm도 넘는 콘크리트 방벽속에 도사리고 있는데다, 5~8Km 간격으로 병력 전원을 수용할 수 있는 지하 30m의 대피호가 설치된 이 요새는 인류의 전쟁사 전체를 통틀어 전무후무 할 만큼 견고한 것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이곳에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한 독일놈들은 프랑스 땅에 한발도 들여놓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전쟁도 없다."

이것이 프랑스 지휘부의 기본적인 인식이었고, 독일군이 폴란드를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이렇게 자신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마지노 선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순진한 믿음은 크나큰 오산이었음을 그들은 곧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각, 독일을 견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연합국인 영국 역시 프랑스가 취한 행동과 별차이 없는 엉거주춤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와 동시에 4개 사단으로 편성된 「대륙 원정군」을 유럽대륙으로 파견했지만 그들이 달려간 곳은 폴란드가 아니라 독불국경에서 그대로 눌러 앉아 버린 것이다. 그대신 강력한 해군이라는 장점을 발휘하여 독일로 반입되는 모든 군수물자를 차단하는 해상봉쇄작전에 최우선 과제를 두고 있었고, 또 이것은 실제로 약간의 효과도 있었다.

중부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독일은 바다를 통한 전쟁수행 물자의 보급이 차단되면 장기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낙관론과 눈앞으로 다가온 전쟁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분위기, 그리고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만은 피해보자는 지나친 신중함 속에 닥쳐온1939년의 겨울에는 최근 30년 사이에 처음이라고 하는 매서운 한파가 밀어닥쳤고,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속에서 히틀러가 벨기에를 향한 대진격의 개시일로 예정했던 1월 17일은 별일없이 지나갔다.

마지노 선에 포진한 프랑스군과 영국 대륙 원정군은 좀 따분해 졌고, 벨기에에서 발견된 그 '괴문서'로 인해 한동안 시끄러웠던 파리와 런던도 그 사건을 곧 잊어 버렸다..


[▲[프랑스 영내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는 프랑스군 기갑부대의 호치키스 H35 전차들. 그들은 1939년의 후반기 내내 이런 훈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마지노선이 있는데 뭐 이런 것까지 필요할까?" 라는 것이 이 당시 프랑스군을 지배히고 있던 솔직한 정서였다.]

[▶▶서부전선에서 평온무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건 독일군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군악대가 지그프리드 선 너머의 프랑스군을 위해 프랑스의 유명가곡을 연주해 주고 있다. 서부전선의 일제 진공을 앞둔 시점에서 일종의 위장평화 공세였다.]




 아무래도 독일은 폴란드를 손에 넣은 것에 만족하고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 먹은 듯 했고, 성급한 평론가들은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무료해진 프랑스군 총사령관 「가믈렝」원수는 영국군 지휘관들에게 프랑스군의 부족할 것 없이 풍족한 영내 생활과 위풍당당함을 자랑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 계속된 평화 속에서도 엄정한 군기와 긴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군대란 드문 법이어서, 영국 제2군단 사령관 「알란 브룩」장군이 프랑스군을 시찰하고 나서 내린 평가는 가믈렝 원수의 자부심과는 거리가 좀 먼 것이었다.

"여지껏 내가 본 군대 중에서 가장 군기가 빠진 난잡한 군대였다. 총에는 녹이 잔뜩 슬어있고, 군복을 제대로 차려 입은 병사는 하나도 없었다. 그 중 몇이나 독일군이 마지노 선을 향해 몰려올 때 제대로 총을 쏠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아무래도 프랑스는 너무 오랫동안 1차 대전의 전승국이라는 과거의 영광속에 안주 해 온 것 같다."

다만 프랑스군의 전력에 대해 이처럼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던 영국군도 마지노 선이 정말 튼튼하게 잘 만들어 졌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했다..



 [▲선전삐라를 매단 풍선을 프랑스 영내로 날려보내고 있는 독일군 병사들. 삐라의 내용은 대체로 독일군은 프랑스를 공격할 생각이 꿈에도 없다는 것으로부터, 당신이 이곳에 있는 동안 애인이나, 아내가 바람을 피울지도 모르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고전적인(?)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냉용을 담고 있었다.]

[▶▶전쟁은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장작 헛간으로 위장된 지휘소 앞에서 부하들과 삼페인을 들고 있는 프랑스군 포병사령관 "비에이야르"준장. 유난히도 추웠던 1939년의 겨울내내 이처럼 술을 마시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던 서부전선의 형편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병력이나 장비의 숫자로만 본다면 프랑스는 여전히 독일을 압도할 수 있는 유럽 최대의 군사 강국이었다. 실제로 이 당시 영국이 당장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이라곤 프랑스로 보내놓은 이 대륙 파견군 4개 사단이 전부였으므로, 만일 이 서부전선에서 '진짜 전쟁'이 벌어 진다면 독일군에 맞서 싸워야할 연합군의 주력은 프랑스군 이라는 사실도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참고문헌:(주)호비스트 월간 취미가 & 알기쉬운 2차 대전사

             EBS 2차 대전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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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장교가 T34를 파괴하기 위해 어디를 타격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모습. 1943년 동부전선출처 : 헬렛루즈 디스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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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북극곰은 사냥한게 아니고 죽어서 떠있는거 건진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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