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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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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 사진 및 영상자료 추가가 지속됩니다.

회화와 사진으로 보는 대조국전쟁(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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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데네이카, "파트랴르쉬예 연못," 1946년작. "싸우는 모스크바, 1941년" 시리즈 중에서.

1941년 겨울에 독일군은 모스크바 부근까지 진출하고 소련의 심장부를 위협했다. 모스크바를 떠나지 않은 스탈린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선언한 가운데 붉은 군대의 치열한 반격이 주효해서 수도를 적에게 뺏길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기는 했지만, 총을 멘 무장 민병대원들이 거리를 순찰하고 하늘에는 저색기구가 떠있는 모습에서 위험이 채 가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심상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아이스하키를 즐기고 있으니......



 

(17) 그림설명: 락티오노프(A. I. Laktionov), "전선에서 온 편지".


후방에 있는 시민들은 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가족의 안위에 가슴을 졸이면서 지냈다. 이 그림은 전선 병사가 보낸 편지를 받아든 후방 가족들의 기쁨을 묘사하고 있다. 후방의 삶도 안락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것을 전선을 위해!"라는 구호 아래서 모든 것이 전쟁에 투입되었고, 후방에는 여자와 어린이만이 남았다. 후방에 있는 젊은이라면, 그림에서 보이듯이, 상이용사였을 것이다. 내려앉은 마루바닥과 허물어져가는 벽은 전시경제에서 소련 시민이 당한 고통을 잘 말해준다. 예술 기법상 탁월한 이 작품에는 노골적인 정치적인 가공이 들어가지 않지 않았다. 비록 영웅주의도, 고통도 묘사하지 않았지만, 락티오노프는 이 그림으로 1948년에 당시 소련 최고의 영예인 스탈린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 그림은 지극히 암울했던 후방의 삶을 낭만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평론가는 이 그림에서 "사람들의 전체 분위기, 그들의 낙관,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한 표정은 허위다"라고 주장했다. 독소전쟁이 끝나고 2년 뒤에 완성된 이 작품에는 애써 좋은 기억만 간직하려는 사람들의 심리, 또 그것을 조장해서 정치적 과오를 숨기려는 스탈린 체제의 노력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의 주인공들이 얼굴에 띤 웃음은 사실의 왜곡이다. 지극히 고통스러운 후방의 소련인들의 삶은 현실에서는 그런 웃음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18) 그림설명: 넴네스키(B. Nemneskii), "봄내음".

전쟁화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는 전차부대원들이 맞는 어느 봄날의 아침이 그려져 있다. 봄이라 그런지 아름답다. 비록 안개 자욱한 전선의 봄이라 할 지라도...... 적의 공중정찰을 피하기 위해 전차는 관목 속에 은폐되어 있다. 항상 잠이 부족한 고참병사들은 야전 담요를 덮고 여전히 꿈에서 헤메고 있지만, 아직은 전쟁이 두려우면서도 신기한 어린 병사는 신참 티를 내느라 제일 먼저 잠에서 깨었다. 과연 이 병사와 전우들이 어쩌면 그 날 벌어질 지도 모를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음날 아침에 봄내음을 느끼면서 단잠에서 깰 수 있을까?!





(19) 그림설명: 크리보노고프(P. Krivonogov), "베를린 제국의회 계단을 올라 돌격".

1943년 봄 이후로 붉은 군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서쪽으로 독일군을 계속 밀어부쳤고, 드디어 인류사상 견줄 만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소전은 1945년 봄에 막바지에 이르렀다. 적국의 수도 베를린을 포위하고 시내 중심부로 옥죄어 들어간 소련군은 1945년 4월말에 독일 제3제국의 심장부인 독일 제국의회 건물에 이를 수 있었다. 크리보고노프의 그림은 제3제국의 숨통을 마지막으로 끊기 위해서 화염에 휩싸인 제국의회 건물 계단을 올라 돌격하는 붉은 군대 병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





(20) 사진설명: 1945년 4월 30일 오후 22시 50분 베를린 제국의회 건물 지붕에 붉은 군대 병사가 소련 국기를 게양함으로써 드디어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났다.

붉은 군대가 오더(Oder) 강을 건너 베를린을 포위하고 마지막 공격을 감행한 뒤로 소련은 30여만 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피해를 입었지만, 끝내 사실상 전쟁의 종식을 뜻하는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당연할 지도 모르지만, 제국의회 건물에 소련 국기를 꽂는 역사적인 장면의 주인공이 된 소련 군인은 훈장과 영웅 칭호를 받는 영예를 누렸다.





(21) 그림설명: 크리보노고프(P. Krivonogov), "승리".

마지막으로 총성이 그치자, 붉은 군대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병사들은 이 기쁜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승자의 환희? 살아남은 기쁨? 고향에 있는 가족과 애인? 죽어간 전우들? 평화의 소중함?......





(22) 코스테츠키(V. N. Kostetskii), "귀환".

전선에서 돌아온 남편을 껴안는 아내의 감격이 묘사되어 있다. 떠날 때만 해도 젖먹이였을 아들은 어느 틈에 훌쩍 커서 말로만 듣던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기뻐하고 있다. 문간에서는 어머니일 수도 있고 장모일 수도 있는 초로의 부인네가 나이에 걸맞게 기쁨을 자제하면서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처럼 상봉의 환희를 누린 가족은 소련에서 얼마 되지 않았다. 1941년 6월 22일부터 1945년 5월 8일까지 전사한 소련군의 수는 천만 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목숨을 잃은 민간인의 수까지 합친다면, 소련국민의 사망자 수는 적게 잡더라도 2천 7백만 명이 넘는다. 여기에 부상자 수까지 감안한다면......! 당시 소련의 전체 인구가 2억을 약간 밑돌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독소전쟁을 겪은 소련 시민들 중 전쟁 중에 가족과 친구를 잃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3. 맺음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은 당당히 승리의 주역이었지만, 전쟁은 소련 사회에 치유하기 힘든 너무도 큰 상처를 남겼다. 전쟁의 참화로 경제는 극도로 피폐해졌고, 잿더미가 된 도시에서 주민들은 당장 바람과 비를 피할 집을 찾지 못하고 노숙을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 막대한 재산 피해마저도 인명피해와 비교되면 무색해진다. 너무도 많은 소련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서, 전후에 거리에서는 몸 성한 청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같은 현상을 '전후 소련의 성비는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다'고 무미건조한 학술용어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올린 회화 작품을 그린 화가나 사진을 찍은 종군 사진기자와 달리 역사가가 냉정한 인간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얼핏 보기에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필치로 써내려간 전문 연구서도 문장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들, 남편, 아버지, 아저씨의 죽음을 알리는 전사통지서를 붙들고 오열하는 부모, 아내, 아들, 딸, 가족의 슬픔을 마치 연구자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눈시울을 적시며 연구를 진행했음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소전쟁 시기에 소련시민들이 느낀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감지하는 데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글쓴이의 의도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글쓴이는 전쟁의 사상자를 남성만으로 표현했지만, 적지 않은 소련 여성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적과 맞서 싸웠다는 사실을 결코 무시하지 않음을 밝히고 싶다. 전선으로 간 남성 대신에 여성들이 공장에서 기계를 돌려 포탄을 생산하고 집단농장에서 쟁기를 끌어서 곡식을 키웠다. 이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소련은 결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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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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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기행 http://www.ilovehistory.net/



2002년 01월09일 2차대전사 운영자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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