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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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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ss부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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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과 나치즘에 대한 광신성으로 유명했던 Waffen-SS(이하 무장친위대)는 제3제국의 전쟁 수행의지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45년 5월까지 38개 사단 800,000명 이상이 무장친위대에서 복무했고 이들중 20-25%가 전사했다. 



 

무장친위대는 북아프리카 전투를 제외한 모든 전선에서 싸웠고 특히, 독소전쟁과 북서유럽전선(Rostov, Kharkov, Demyansk, Kursk,Cherkassy, Caen, Falaise 등)에서 벌어진 중요한 공세와 방어전에서 지칠줄 모르는 놀라운 투지를 보여줬다. 400명이상의 무장친위대 장교들이 기사십자훈장Ritterkreuz을 수상했고 그들중 몇몇은 군, 집단군과 같은 대부대를 지휘했다.그러나,비록 전장에서 매우 인상적인 전과를 올리긴 했어도 무장친위대가 처음부터 육, 해, 공군을 능가하는 제4의 무장집단으로서 국방군Wehrmacht(베르마흐트, 참고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방군은 라이히베르Reichwehr라 불리운다.)위치를 확고히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국방군과 별개로 지역 SS지휘관SS-Oberabschnitte에 의해 정부의 간섭을 받지않고 나치당의 명령에 따라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정치적응분대Political Readiness Squads(Politische Bereitschaften)라 불리는 무장을 갖춘 SS부대가 창설됐고 33년 3월엔 히틀러의 명령으로 그의 절친한 친구인 디트리히Sepp Dietrich가 마찬가지로 비합법적 조직인 총통경호대Leibstandarte(라이프슈탄다르테)를 조직한 것이 무장친위대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전쟁전 이러한 분대들은 기본적으로 독일국내에서 나치당의 정치 목적 달성을 위한 정적 타도 등 유효한 물리적 수단으로써 사용되어졌는데 34년 6월 히틀러의 권위를 위협하고 통제불능상태일 정도로 비대해진 돌격대 지도자인 룀과 그의 측근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부대들도 바로 Politische Bereitschaften(34년 가을부터 SS-Verfugungstruppe로 바뀜)였다. 


히틀러는 수차례 문서를 통해 SS-Verfugungstruppe(페르퓌궁스트루펜)은 특별한 국내정치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도구로써 오직 총통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히믈러는 이러한 SS-Verfugungstruppe을 좀 더 확대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따라서 히믈러는 경찰력 강화를 핑계로 그의 휘하조직들을 무장시켰고 이 조직들을 바로 직업적 무장단체으로 탈바꿈시켰다. 


지원자들로 충원된 SS-Verfugungstruppe은 높은 수준의 훈련과 양질의 장비, 정치적 충성심으로 무장해 정규군을 능가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히믈러의 이러한 계획은 곧 오직 국방군만이 독일의 유일한 무장집단이여야 한다는 독일육군최고사령부OKH의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왜냐하면 육군은 돌격대SA와 같이 SS가 그들의영향력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명백히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전쟁발발 前기간중 육군과 SS간에 Verfugungstruppe의 조직, 무장, 기능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이 오고갔는데 SS의 성장을 견제하는 OKH의 정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 전쟁전야까지 해골부대를 포함한 무장 SS부대규모는 23,000명을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38년 8월 17일의 포고를 통해 히틀러는 마침내 무장친위대의 독립성뿐만 아니라 군사적 성격까지 인정하는 포고령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가 초기부터 반복해서 강조해오던 주장(히틀러는줄곧 국방군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방군만이 독일의 유일한 무장집단einziger Waffentrager이여야만한다)과는 상반된 것이어서 군부쪽의 반발을 사는 요인이 됐다.


한편 히틀러가 무장친위대의 손을 들어준 이상 이제 문제는 무장친위대가 국방군과 군사적 임무를 합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전장에 투입될 무장친위대의 임무, 규모, 편제에 집중됐다. 2차대전발발이 임박할 당시 SS 무장부대는 이미 급속한 팽창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었는데 39년 11월까지 해골부대와 같은 SS소속 모든 무장부대들이 Waffen-SS에 편입됐다. 동시에 39년 10월 최초로 3개의 SS전투사단이 창설됐다. 


            ①Verfugungstruppe⇒SS-division "Das Reich"

            ②Totenkopfverbande(Death's Head units)⇒SS-Division "Totenkopf"

            ③Police⇒Polizeidivision(42년에야 무장친위대의 일부로 편입됐다.)


그리고 증강된 차량화 연대로서 히틀러 개인경호대인 Leibstandarte를 핵심으로 4번째 사단Leibstandarte-SS-Adolf Hitler/LSSAH가 창설됐다. 


무장친위대는 자체 일반참모 양성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 창설된 부대에필요한 지휘관과 고급장교들은 일반적으로 전직 국방군이나 경찰간부(그들은 경력, 개인적, 정치적 이유로 인해 무장친위대로 자리를 옮겼다.)들로 조달됐고 초급장교단은 전직 하사관출신자들이나 SS사관학교SS Junker cadet school 출신자들로 충원됐다. 


무장친위대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40년부터 SS전투사단들은 독일이외의 지원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들 지원자들은 2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Volksdeutsche라 불리는 독일이외지역(특히, 헝가리, 루마니아, 발칸지방)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게르만화한 국가(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의 지원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비록 45년까지 수십만명의 Volksdeutsche와 게르만화 국가출신 지원자들이 무장친위대에 군적을 올렸지만 이들은 독소전쟁에서의 인명피해를 메꾸기에도 역부족이었고 범게르만군대Pan-Germanic mass army로 확대되는 과정에서도 부족함을 노출했다. 이를 시정키 위해 43년부터는 프랑스, 이태리, 동부유럽(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발칸반도지역의 비게르만족 지원자들도 무장친위대에 입대가 허용됐고 이때문에 종전시까지 무장친위대원의 50%이상이 외국인이나 외국에 거주하는 독일인들로 채워졌다.


이 사단들 중 이슬람교도들로 구성된 사단(13th-Handscher, 21st-skanderbeg, 23rd-Kama)과 Indian Legion, 소규모의 British Free Corps들은 처음부터 정치적 선전수단으로써 창설됐고 41년이후 창설된 대부분의 SS전투사단들의 전투능력은 대개 SS수뇌부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무장친위대의 질적 저하 원인은 물론 훈련과 장비에서의 결점때문일수도 있겠으나 근본원인의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려는 동기부족이 더 큰 요인이었다. 많은 수의 독일인들과 Volksdeutsche, 외국인들이 독일측의 감언이설과 협박 때문에 무장친위대에 입대했고, 특히 외국인들은 거짓 꾐에 빠져 가입하는 수가 다반사였다.   즉 히틀러와 그밖의 나치 지도자들은 독일의 최종적 승리후에 그들 모국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장미빛 환상을 제시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38개의 SS전투사단중 일급의 전투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단은 6개정도에 불과했는데 대표적인 사단들은 the LSSAH, Das Reich, Totenkopf, Wiking등 이었다. 위 사단들은 42-43년 사이에 장갑사단으로 개편됐고 주로 전선에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소방수fire brigade로 투입되곤 했다. 


그들이 전장에서 보인 광신성과 용맹성, 전술의 탁월함은 곧 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 잔학행위와 함께 곧 전설이 됐다.



20012년 11월26일 멍텅구리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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