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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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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ss부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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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무장친위대 뿐만 아니라 히믈러 SS제국의 다른 부문에도 광범위한 팽창을 가져와 전 유럽에 천년제국의 지배권이 미침과 함께 강제수용소도 규모, 조직면에서 급격하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수용소 수감자수도 39년 25,000명에서 45년 1월엔 700,000명으로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유럽사회의 전부문에 미친 가혹한 SS의 억압, 몰살정책을 살펴볼 때, 이러한 통계는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즉 이러한 숫자들은 수용소내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거주조건, 노동에 희생된 수십만 명은 말할것도 없고 보안대SD 소속의 살인전문기동부대Einsatzgruppen과 라인하르트계획Operation Reinhard에 의해 특수고안된 가스실에서 체계적으로 몰살된 수백만의 유태인, 집시들의 숫자는 포함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제수용소 조직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수용소역할의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전, 수용소는 제국내부의 적을 제압해 중화시키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42년 이후 이러한 기능은 대량절멸과 경제적 착취로 나누어졌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챘겠지만 2가지 정책은 상호모순적이었다. 


즉 경제적 착취는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계속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데 반해, 대량몰살은 그러한 노동력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SS는 종전시까지 이문제를 조화시키는데 실패했다. 


 군사, 억압기구의 급속한 팽창과 함께 SS는 독일의 점령지 정책에서 중요한 존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SS가 볼때 점령지국가들을 자신들의 행정, 경제, 군사, 인종 및 이주정책에 관한 야심을 현실화시키는데 매우 적합하고 훌륭한 모르모트와 같은 실험동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따라서 SS총책임자 히믈러는 장차 나치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전후 제3제국 주도의 유럽대륙 재건설과정에서 SS가 주도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를 갈망하였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중추기구로 "지역고등(위)SS, 경찰지휘관 조직a network of territorial higher SS and Police leader"(Hoehere SS-und Polizeifuhrer)이 만들어졌는데 이 기구는 점령지내에서 제3제국의 다른 군사, 행정기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SS권력을 확대, 공고히 하려고 광분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특히, 동부유럽지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군최고사령부OKW와의 협약후 SS는 배후지역 치안확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여기서 "치안확보"라는 것은 흔히들 생각하는 "대중 안전 보장"이 아니라 바로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모든 실제 또는 가상의 국가의 적들에 대한 박멸, 슬라브민족에 대한 노예화정책, 무자비한 경제적 착취, 빨치산Partisan, 레지스탕스 활동 탄압으로 구체화된 공포 및 테러활동을 통해 확보되었다. 전쟁초기 대량학살은 "전시 필요성"에 의해 정당화되었지만 곧 Wannsee회담(SS-elite참조)에서 결정된 최종적 해결Final solution(인종적으로 육성할 가치가 없는 유태인, 슬라브족에 대한 체계적 말살)프로그램이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동시에 제국총통(SS-Reichsfuhrer, 


히틀러는 그냥 총통fuhrer이다.)이자 39년 "게르만령(領) 강화를 위한 제국장관Reichskomissar fur die Festigung Deutschen Volkstum"에 임명된 히믈러는 정복된 폴란드와 소비에트 영토의 식민화에 관한 포괄적 계획을 수립하였다.-general plan "Ost" 동방문제에 대한 일반계획은 


①수백만 슬라브족의 서 시베리아 강제이주,

②슬라브족을 제외한 동방거주 원주민에 대한 선별적 

게르만화germanization라는 2가지 축으로 이루어졌고 쫓겨난 슬라브족을 대신해 SS는 독일농민, 퇴역군인 뿐만 아니라 Volksdeutsche(독일본토이외지역 거주 독일인), 제국주변국가 지원자들을 동방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주자들의 선별, 게르만화 작업과 함께 병합된 동방영토로의 이주작업은 주로 SS-Obergruppenfuhrer 베르너 로렌쯔Werner Lorenz가 지휘하는 Volksdeutsche Mittelstelle(the Liaison Officefor Ethnic Germans)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쟁이 독일에 불리하게 진행되자 이 계획은 연기되는 듯하더니 종국에는 대부분이 취소되었다. 


 동방에서 SS가 추진한 과대망상적 야욕을 고려해볼 때, SS가 북,서부유럽에서 실시한 프로젝트 또한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못될 것이다. SS의 관점에선 점령지 노르웨이, 덴마크, 플란더스(플랑드르)Flanders-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지역은 장차 대게르만 제국의 없어서는 안될 일부분과 동방에서 획득한 거주영역Lebensraum에 이주시킬 이주민들의 또다른 공급원으로 여겨졌다. 또한 SS는 점령지내 독일협력자 단체, Germanic-SS(게르만화한 국가에서 독일본국의 일반-SS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SS조직)과의 협조와 통제를 통해 소위 "검은 명령black order"라는 정치적 영향력을 영속히 행사하기 위한 기반조성에 주력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제2차세계대전은 SS로 하여금 전유럽에 걸쳐 그들의 촉수를 구석구석 행사할 수 있게끔한 역사적으로 특기할 만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역설적으로 히믈러 제국의 영향력은 독일의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과정에서도 확대되어졌다. 즉 전장에서 들려오는패전소식이 하나, 둘 쌓여만 갈때마다 SS의 영향력은 거꾸로 확대일로를 걸었던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44년 7월 히틀러 암살실패, 동부점령지 포기, 연합군의 노르망 디상륙이 제3제국이 붕괴를 가속화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SS의 권력은 그 정점에 이르고 있었다. 즉 이러한 사건들은 패배주의자들에 대한 나치 테러의 또다른 강화라는 결과를 잉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지막 발악도 히틀러가 장담했던 천년제국이 독일역사상 어떤 국가보다도 빨리 붕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글은  http://my.netian.com/~meyer/policy.htm 에서 퍼온 글 입니다



2001년 11월26일 멍텅구리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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