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프러시아 대피난(Flight 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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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는 소련군이 동프러시아 공세상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도에서 단치히만쪽으로 튀어나온 만을 보시면 까만원이 보이실텐데 여기는 '쾨니히스베르크'로 후에 여기에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올것입니다.
이곳은 나중에 본문에도 나오겠지만 단치히만의 지형상 만의 가장 깊은 곳을 점령당하면 서쪽과 육로가 끊어져 고립됩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런일이 여러번 있었던 곳으로 이런경우 피난길은 단치히만을 배로 건너는 길 뿐이었습니다.
참고로 엘빙은 검은화살표와 작은 흰화살표가 만나는 부근입니다. 희미하게 ...ing라는 지명이 보이는 곳입니다.
(자료출처:http://www.onwar.com/의 'Maps of World War I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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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파멸의 시작
영국 수상 처칠은 아르덴느전선에서 연합군이 받고 있던 무거운 압력을 덜기 위해 스탈린에게 소련군의 공세를 앞당기라고 재촉했다.
(여기서 연합군이 받는 압력은 발지전투를 가리키는 것인 듯 합니다. 이 전투로 독일군은 사실상 조직적인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소련군의 공세에 대항할 귀중한 예비전력이 될 수 있는 병력을 잃게 됩니다. 한마디로 무의미한 반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먼저 땅이 얼어붙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소련군의 탱크가 동부 폴란드의 늪과 동프러시아의 마수리아 호수에 빠지는 꼴은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동장군(冬將軍)이 찾아오자 소련군은 1월 12일부터 14일까지 2차대전중 가장 길고 치열한 포격을 퍼부은 뒤 공격을 개시했다. 동프러시아와 북부 폴란드의 남쪽 측면을 방어하고 있던 독일 제2군은 완강하게 저항했다. 1월 16일까지 '콘스탄틴 K. 로코소스키'원수 휘하의 소련 제2백러시아 야전군은 겨우 몇km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그동안 전지역은 한 겨울을 맞이하여 꽁꽁 얼어붙었다. 눈부시게 맑은 영하의 날씨에 소련 폭격기와 전투기는 일정한 편대를 유지한 채 전선과 그 배후 지역을 마음대로 강타했다. 비행기로 그렇게 두들겨대도 깨지지 않은 곳은 탱크들이 들어가 밀어버렸다. 독일군 사단들은 순식간에 괴멸되었고 전선 여기저기에 뻥뻥 뚫린 구멍들을 얼마 없는 보충부대로 채우기란 불가능했다. 군데군데 남아있던 독일군부대들은 고립된 채 저항을 계속할 뿐이었다. 나머지 독일군병사들은 지리멸렬, 도망병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마침내 작동을 시작한 소련군이라는 거대한 불도저를 막을 길은 전혀 없었다.
1월 23일. 벌써 1주일이 넘도록 소련군 대위 'G. I. 야쉔코'와 그의 부하들은 하루에 탱크를 떠나있는 시간이 몇 시간도 안 될 만큼 탱크를 몰아댔다. 몸이 뻐근하고 팔다리가 쑤셨지만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 독일의 제2군이 분쇄됨에 따라 소련군은 동프러시아를 지나 얼어붙은 늪과 호수를 휩쓸었다. 그런 다음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단치히만을 향해 진격함으로써 동프러시아의 독일령을 서쪽과 차단시켜버렸다.
야쉔코대위와 T-34탱크 9대로 편성된 그의 중대는 사전 정찰을 위해 해뜨기 몇 시간 전에 출발했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간단했다. 적의 저항이 있을 때까지 발트해를 향해 북쪽으로 진격하라는 것이었다. 해안까지는 직선거리로 70km였고, 불타고 있는 오스테르로데 읍이 그들 등뒤에 있었다. 탱크부대는 적의 공격을 한번도 받지 않고 오로지 피난민의 행렬을 헤쳐가며 전진했다.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야쉔코대위는 떠나기 직전 각 탱크 지휘관에게 공격을 받지 않는 한 사격을 하지말고 피난민들의 마차가 탱크를 위해 길을 비킬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주라고 지시했다. 그런데도 어떤 마차는 도랑에 빠졌으며, 대개 여자인 마부가 화가 나서 소련군을 향해 주먹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손을 흔들기도 했다.
탱크부대는 두차례나 독일군 대열을 스쳐 지나갔지만 독일군은 순순히 길을 비켜 탱크가 지나가도록 했다. 초라한 모습에 지쳐보이는 독일 병사들은 소련군의 탱크 따위는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마치 장님이라도 된 듯이...
T-34 9대가 소도시 프로이시쉬홀란트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통과할때에는 정오가 가까웠고 야쉔코대위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탱크는 붐비는 도로를 비집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뒤에 가서야 그들은 제4, 5번 탱크가 옆길로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두 대의 T-34는 영영 실종되고 말았다.
3번 탱크가 독일병사 하나가 몰고가던 두 바퀴 수레를 짓이겼지만 한 방의 총성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대열의 마지막 탱크가 읍의 외곽에 이르자, 길 좌우의 눈 덮인 벌판에 포탄이 작렬했다. 앞서가던 짐마차에 탄 독일 피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탱크가 소련군 소속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분명했다. 순간 야쉔코대위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닥치는대로 깔아뭉개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포격은 금방 끝나고 그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탱크부대는 전진을 계속했다.
오후4시에 7대의 T-34는 단치히만에서 아주 가까운 엘빙항 남쪽 8km의 그루나우 부근에 정지했다. 그들은 일련의 대전차 참호들로 통하는 대로상에서 길게 늘어선 차량대열 사이에 끼이고 말았다. 그들은 한치한치 서서히 전진을 계속하여 마지막 차단호를 넘은 다음부터 다시 정상속도로 엘빙을 향해 굴러 들어갔다.
엘빙시에 들어서자마자 야쉔코대위는 심장이 무섭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이건 현실일 수가 없다. 틀림없이 꿈이다.'
저 앞에는 전차(電車)가 승객을 가득 태우고 가는 것이 보였다. 이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평온한 도시의 분주한 중심가에 늘어선 가게들은 모두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 몰려다니고 있었고 희미한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이건 요지경이 아닐까? 전쟁이 끝나 버린 것일까? 아니면 일종의 함정인가?
야쉔코로서는 물론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의 눈앞에 벌어진 이 기이한 광경은 히틀러의 광적인 군사적 고집과 나치당의 범죄적 태만, 특히 민간인을 대피시키자는 주장을 꺾은 나치 친위대장 코흐의 옹고집이 빚은 결과였다. 1월 13일 현재 나치 행정관들은 당시의 전선에서 약 200km 후방에 있는 엘빙은 '안전한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대다수의 민간인들은 소련군이 덮칠 때까지 도망가지 못했다.
T-34탱크들은 평화로운 거리를 거침없이 전진했다. 탱크의 무한궤도가 무시무시한 소음을 내는 것 같아 안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몹시 조마조마했다. 곧 우람한 시청을 지나 북쪽으로 뻗어나간 널따란 대로에 나선 그들은 '이렇게 나가면 금방 스웨덴까지도 가겠는데'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순간 소련군탱크들은 거의 동시에 사방에서 포격을 받았다.
"7번 탱크 피격!"
후미에서 보고가 날아들었다.
"사격 개시!"
야쉔코대위는 마이크에 대고 고함쳤다. 조금전만 해도 붐비던 거리는 어느새 텅비고 T-34탱크들이 포구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포격에 탱크 3대를 잃고 나서, 엘빙 북방 11km지점 얼음으로 뒤덮여 허허벌판이 된 프리쉐하프 석호(潟湖: 모래톱따위로 외해와 분리되어 이루어진 작은 호수)에 4대의 나머지 탱크가 도착했다. 그들은 텅빈 건물 가까이에서 대피하고 있었다. 3일 후 주력부대가 도착해 그들과 합류했다.
소련탱크가 도시 중심부를 꿰뚫고 지나간뒤 얼마 안 되어 엘빙의 나치 지방당 책임자(지구당 위원장)가 시장 '프리츠 레저'박사에게 시민들을 피난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미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시장실 창문을 내다보니 짐을 잔뜩 실은 수많은 피난민들이 서쪽으로 정거장과 엘빙강의 다리를 향해 줄지어 가는 광경이 보였다. 탈출하는 피난민들의 물결은 이미 전 시내에 걷잡을 수 없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자정직전에 나치당위원장은 시민들을 대피시키라는 명령을 취소한다고 연락해왔다. 모든 사람은 현 위치를 고수할 것이며 친위대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자기 위치를 떠나는 관리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총살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도도한 물결과도 같은 피난민, 후퇴하는 군부대 및 낙오된 병사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동쪽과 남쪽에서 뒤죽박죽 몰려든 사람들은 엘빙시 주민들까지 함께 몽땅 휩쓸어가고 있었다. 내버린 물건들이 길가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트렁크, 상자, 침구, 타자기, 가구, 옷가지 등 갖가지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울어대는 어린아이들, 젖먹이를 팔에 안은 젊은 어머니들, 그리고 지쳐버린 노인들이 갈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처참한 모습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출처:디코 천마 (CJSAK@defence.co.kr)
2002년 02월09일 운영자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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