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1937-1945)당시의 중일양국군의 사상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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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합계
일본군
1937 51,220 204,880 - 256,100
1938 88,978 355,912 - 444,890
1939 82,019 328,076 - 410.095
1940 68,327 273,309 - 341,636
1941 36,209 144,836 - 181,045
1942 27,841 111,362 - 139,203
1943 31,905 127,609 - 159,514
1944 50,158 200,639 - 250,790
1945 47,051 188,204 - 235,255
계 483,708 1,934,820 - 2,418,528
중국군
1937 125,130 242,232 - 367,362
1938 249,213 458,804 - 735,017
1939 169,652 176,891 - 346,543
1940 339,530 333,838 - 673,368
1941 144,915 137,254 17,314 299,483
1942 87,917 114,180 45,070 247,167
1943 43,223 81,957 37,715 162,895
1944 102,719 103,596 4,419 210,734
1945 57,659 85,583 25,608 168,850
계 1,319,958 1,761,335 130,126 3,211,419
1. 자료는 l.e Eastman의 저서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인명손실에 별 관심이 없던 양군인 관계로(특히 중국군)
과연 이처럼 세밀한 집계가 가능하였을지 의문이지만 두 국가에 공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연구자인만큼 큰 왜곡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2. 중일전쟁이 1937년 7월에 발발하였음을 고려하여 본다면 총 8년간의 전쟁기간중
초기 3년간에 일본군의 피해가 가장 막대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이기간 동안에는 장개석 휘하의 국민정부군 직할계가 전쟁의 주역을 맡은 결과
일본군에 적지 않은 피해를 강요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1940년에 달하면 양군 사이의 전사자 교환비가 5:1에 이르는데 이는 국부군의 약화와 함께
장개석이 전투역량이 있는 정예 직할군을 사천, 귀주, 운남의 남서 3성으로 후퇴시키고
지방 군벌군에게 일본군과의 전투를 맡긴 결과 상대적으로 약체인 군벌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많은 희생을 치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는 양국의 전선이 고착상태에 빠져 인명손실이 줄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8년간의 전쟁 전기간동안의 전사자 비는 중국 1,319,958: 일본 483,708인데 이는 2.73:1의 전사자 교환비입니다. 대전기간 동안 줄곧 4:1이 넘었던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사자 비율을 생각하여 보면 중국군이 나름대로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48만여명이라는 일본군의 전사자 수는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 전사자 총수 130여만명의 37%에 해당하는 비중을 갖고 있으며 이는 중일전선이 우리가 생각하는 2선급 전선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02월20일 제ss기갑사단장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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