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의 테러-전략폭격 [돌하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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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이전의 1차대전까지도 몇몇예외적인 경우(도시를 요새지삼아 항거한다든가)를 제외하고
후방의 시민들을 공격해 피해를 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야만적인 행위(중요한 건 유럽의 인간들간에 그렇다는 거지 식민지인들에게는 이런 도덕이 적용안되었죠,문명을 가장한 이기주의....)로 간주했죠.
그런데 이런 암묵적인 룰이 1차대전에서의 독일에 의해 깨집니다.
독일은 연합국시민의 사기를 꺾기 위해 사거리 100키로가 넘는 장거리포 일명'파리포'로 파리에 직접 사격을 가하고
영국런던에 째팰린비행선으로 최초의 전략폭격을 가합니다.
당시이 두가지 공격은 정확도와 위력면에서 2차대전의 전략폭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공격이라는 엄청난 충격을 가져옵니다.
1차대전의 종전후 발달한 비행기 기술에 의하여 장거리폭격기로 적의 후방군수사업시설을
마비시키면 전쟁을 끝낼수 있다는 이론으로 발전하여 영미등은 장거리 폭격에 주력합니다.
특이한 것은 정작 최초의 전략폭격을 시도했던 독일은 몇몇선구자(베버장군등에 의한 장거리폭격기계획우랄계획)에
의해 공군의 전략공군화가 시도된 적이 있지만 베버장군의 사망후는 대형폭격기에 의한
전략폭격보다 급강하폭격기와 중형쌍발폭격기에 의한 전술지원을 주임무로하는 공군에 주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2차대전전의 연습전쟁이라고 할 수있는 스페인내전에서 공화국군의 작은 도시'게르니카'에서
무차별폭격(이라기보다는 테러에 가까웠지요.)을 가해 1600명을 살상합니다.인구 1만명정도의 소도시에서
이정도는 꽤 커다란 피해였고 민간인에 대한 이러한 폭격에 세계는 경악하고 이 참상에서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그림을 그려냅니다.(풍경화 아닙니다.오해 마시길.)
서부전선의 전격전에서 로테르담에 또 한번의 이러한 무차별폭격으로 악명을 떨친 독일군이었지만
영국본토항공전에서는 초반엔 비교적 룰?(민간인을 공격않고 군사시설을 공격한다는)을 잘 지켜가면
전쟁을 벌이던 독일군이 방침을 바꾸어 런던을 폭격하는 계기는 우연한 사고였습니다.
원래 영국본토 항공전의 초기에 독일은 런던이나 시가지 폭격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대열에서
이탈한 폭격기가 런던에 오폭을 하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이걸 런던에 대한 본격적 폭격으로 간주한 처칠에 의하여 영국공군이 베를린에 보복폭격을 가하자 분통이 터진 히틀러역시 런던공격을 명령(당시 영국공군에 이미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오판과 런던을 폭격,사기를 꺽자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런던 폭격은 전술상의 큰 실수로 두고두고 희자됩니다.
영국본토항공전이후는 폭격의 주도권을 영국이 잡게 되는데 '해리스'라는 영국장군의 취임으로 영국공군은 한 전기를 맞게 됩니다.이때까지 전략폭격이라도 목표를 정하고 조준폭격을 가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해리스의 폭격은
아예 폭격기의 바다로 지역자체를 폭탄으로 쓸어버리는 융단 폭격과 비슷한 개념을 사용하게 됩니다.
퀼른이나 함부르크가 바로 이러한 융단 폭격의 희생물입니다.이런 방식은 지역자체를 일소하기 때문에
민간인에 대한 고려란 전혀 없었고 한마디로 증오의 표현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베를린의 경우 비교적
장기간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석재건물이 많은 편이라 대형의 화재발생(불이 안 났다는게 아니라 도시전체가
일소될정도의)까진 가지 않았지만 함부르크의 경우 목재건물이 많아 주로 소이탄에 의한 10일간의 폭격이 끝났을 때
잿더미로 변한 도시와 십만명가까운사망자(더 적은 자료도 있습니다.)
특히 연합군의 전략폭격중 악명을 떨치는 것이 드레스덴폭격으로 이지역은 당시 전쟁말기라 피난민들이 몰려있었고 별로 중요한 시설도 없는데다 이미전쟁말기라 그 지역을 폭격해봐야 전세에 별영향을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목조건물인 이 도시에 폭격을 감행 30만의 사망자(15만명이라는 자료도 있지만 이거나 그거나....)를 발생,비난이 빗발치자 후퇴하는 독일군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댑니다.
종전후 최근(90년대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해리스란 시람의 동상을 세우려 하자 독일에선 맹렬하게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과연 이동상 끝내 세웠는지 모르겠네요.)
태평양전선역시 이런 민간인에 대한 폭격의 서막은 일본이 시작합니다.
일본은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는 중국의 사기를 꺽기 위해 임시수도인 중경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 많은 민간인을 살상합니다.다행히 일본엔 연합군만큼의 중폭격기는 없어(항속거리는 상당하지만 융단폭격으로 도시전체를 쓸어버릴 수준은 안 되었다고 합니다.) 도시가 일소되는 일은 없었지만 대신 중국의 방공능력이 너무 후져 제대로 된 방어역시 없었다고 합니다.(그나마 용병비행단 플라잉 타이거즈가 약간 활약하지만.....)
전쟁말기 일본주변에 B-29의 발진기지를 확보한 미공군은 일본에 대하여 본격적인 전략폭격을 시작하는데 일본은 목조건물이 많고 방공능력이 독일에 비교할 수준이 못 되어서 한 번 B-29의 편대가 떠서 융단 폭격을 가하면 말그대로 초토화가 되었다고 합니다.(초창기엔 시행착오를 약간 거쳐야 했지만)사실 원폭보다 일반 폭격이 더 사망이 많은 경우도 있었다는군요.(물론 원폭은 단 한개의 투하로 그만한 효과를 볼수있다는 점에서 비교할 상황이 못 되지만 )
사실 전략폭격은 말이 전략이지,사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서로의 증오감표출에 이용된 광기라고 생각합니다.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폭탄에 죽어간 일반시민들과 가스실에서 죽어간 유태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런 증오의 무대가 내가 사는 시대에선 제발 없기를 바랍니다.
2001년 11월10일 돌하루방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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