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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oot war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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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보트의 에이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후세 역사가들이 독일에게 승리를 가져올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으로 평가하는 U코트 부대에도 대전초반부터 중반에 걸쳐 수많은 적함을 격침시킨 에이스들이 탄생했다. 공군의 에이스들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고 대부분 대전중반이전에 전과를 올리는 바람에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은 사람들도 많지 않았지만(대전 초반에는 훈장수여기준이 더 엄격했다.) U보트 에이스들이야 말로 연합군에 대해서는 가장 무서운 적수였다고 할수있다. 이러한 U보트의 굴지의 에이스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중 하나가 바로 '권터 프린'이다. 대전중 가장 많은 격침전과를 올린 에이스는 U23 / U99에 탑승하여(U35에도 탑승하기는 했지만 U35에서는 전과없음) 56척 320621t (격침 47척, 파괴 6척)을 격침시키거나 파괴한 '오토 크레치머' 이고 권터 프린은 39척 255200t (격침 31척, 파괴 8척)으로 순위를 따지자면 4위에 해당하지만 이번에 쓰게될 스카퍼플로우의 대전과 그 덕분에 지명도에 있어서 단연 최고에 해당한다 할수 있다. 그는 적함을 추격하고 공격하는것이 가장 즐거운 휴가라고 할정도로 하늘이 내린 U보트 전사였다 

*스카퍼플로우에 잠입 

2차대전에 있어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자 U보트 부대도 전면전에 돌입하게 되는데, U보트부대의 첫번째 전과는 불행하게도 민간객선이었다.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첫날인 1939년 9월 4일 U30은 칠흙같은밤에 정규 표시등도 켜지 않고 통상 항로를 벗어나 항해중인 괴선박을 영국군 수송선으로 오인하여 격침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알고보니 이 함선은 민간 여객선인 아데니아호로서 128명의 죄없는 민간인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되었다. 며칠후인 9월 17일에는 U29가 영국군 항모인 케리어져스를 격침시킴으로서 U보트 부대의 공식전과 1호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두가지 사건에 이어 되니츠는 세번째 '사건'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게 되는데 그 결과 나온 아이디어가 참으로 대단한것이었다. 제 1차대전의 패전으로 독일해군의 주력함들은 영국의 군항인 스카퍼플로우로 모여 영국군에 접수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영국군에 항복하는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선내에 해수를 끌여들여 자침한 사건이 있었다. 되니츠는 이러한 비운의 군항인 스카퍼플로우를 기습공격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한것이다. 스카퍼플로우는 영국북부의 오크니제도에 자리잡은 군항으로서 작은 만을 이룬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입구에도 2개의 작은섬이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같은 곳이었다. 여기에 잠입한다는것은 자살행위에 해당할만큼 어려운일이었지만 독일군의 위상을 높이고 1차대전의 치욕을 갚기 위해서는 이처럼 좋은 작전도 없었다. 되니츠는 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수 있는 U보트함장을 선정하기 위해 오래동안 심사숙고한끝에 U47의 '권터 프린'을 선정했던 것이다. 

칼 되니츠 제독은 권터 프린을 불러 48시간동안 생각할 여유를 주었지만 타고난 싸움꾼인 프린은 이 위험한 임무를 기꺼이 수락했다. 사실 이러한 잠입작전은 1차대전중 되니츠 자신이 두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력이 있었고 이를 후배가 이어받는 격이었다. 

출격은 1939년 10월 12일밤. 출격때까지 프린 이외의 U47의 승무원들은 어떤 작전인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출격때 식량과 연료보급이 평상시보다 훨씬 적었고 통신제한을 더욱 엄격히 했으며 출격중 적성선박이 나타나도 지나쳐 버렸기 때문에 뭔가 별다른 임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두운 해상을 디젤엔진으로 전속력으로 달려 영국의 오크니 제도가 바라보이는 곳에 도달한 것이 10월 13일새벽. 함을 바다밑에 완전히 정박시킨 권터 프린은 승무원들을 불러모아 이번작전이 스카퍼플로우에 잠입하여 공격을 벌인다는 것임을 전달했다. 대단히 위험한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승무원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사기는 충천해 있었다. 이어 프린은 다가올 작전에 대비하여 전 승무원들이 잠을 충분히 자 둘것을 명령했다. 

10월 13일 오후4시. 특별히 마련된 저녁식사를 한뒤 7시 15분에 전 승무원에게 전투배치를 발령했다. U47은 조용히 수면위로 부상했는데 때마침 오로라현상으로 주변은 상당히 밝았다. 하지만 프린은 잠항하여 잠입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고 부상하여 잠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것은 프린이 되니츠로부터 명령을 받은뒤 이틀간에 걸쳐 연구한 끝에 생각한 것으로 당시의 U보트는 잠항시에는 디젤기관이 아닌 축전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속도는 기껏해야 8노트 정도였던 반면 부상하여 디젤기관으로 항해하면 훨씬 빠른 속력을 낼수 있기 때문이었다. 1차대전 당시 되니츠가 스카퍼플로우 잠입에 실패한 이유도 잠항하여 잠입하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며 좁은 수로의 강한 조류때문에 수중의 8노트의 속력으로는 U보트가 제대로 기동할수 없었다는것이 프린의 생각이었다. 

프린의 선택은 적중하여 U47은 교묘한 조종술로 수로와 폐기된 선박들을 피해가며 스카퍼플로우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프린은 항구내를 수색했다. 남쪽에는 별다른 선박이 보이지 않았고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자 전방에 전함 2척과 구축함 수척이 발견되었다. 더욱 접근한 프린은 자신이 가진 함선식별표와 눈앞의 전함을 대조해 보고 이것이 R급 전함인 '로열 오크'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그뒤에 함수가 보이는 선박은 순양전함 '레펄즈'라고 판단했다.(사실은 이것은 구식 수상기 모함인 '페가수스'였다.) 

프린은 제 1목표를 로열오크와 레펄즈로 잡고 공격준비를 지시. 선임장교인 엔트라스 대위는 함수의 4개의 어뢰발사관에 모두 어뢰를 장전했다. 권터 프린의 지시로 3600m거리에서 4발의 어뢰가 동시에 발사되었다. 그러나 로열오크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고 제 2목표인 레펄즈에서도 흰 물기둥만 솟았을뿐 아무런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뢰가 불발이거나 빗나간것이 분명했다.(실제로 로열오크에 명중했으나 불발이었다.) 하지만 신통하게도 수분이 경과한뒤에도 항구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둘러 철수하려 했던 프린은 영국군의 반응이 없자 대담하게도 재공격을 결심했다. 부상한채로 항구를 일주하면서 예비어뢰를 재장전한 프린의 U47은 이번에는 더욱 거리를 좁혀 공격위치를 잡았다. 때는 제 1차공격이후 30분이 지난 10월 14일 새벽 1시 16분이었다. 

제 2차공격에는 처음과는 달리 프린의 눈앞에서 무시무시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어뢰를 정확히 맞은 전함 로열오크는 대폭발을 일으키며 거대한 불기둥과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로부터 16분후 로열오크는 선체가 옆으로 기울면서 침몰하고 만다. 이 공격으로 장교 24명과 선원 809명이 전사했다. 1916년부터 1917년에 걸쳐 건조된 29150t의 '로열 소브린'급 4번함인 로열오크는 이렇게 최후를 맞았다. 

로열오크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영국군 구축함들도 전력을 다해 U보트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서치라이트가 사방에서 빛나고 여기저기서 폭뢰가 폭발했다. 

이제 이 사지를 빠져나가야 하는 프린은 디젤엔진과 전동기를 모두 가동시키면서 전속력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도중 영국구축함 1척이 U47을 향해 다가왔다. 결국 발견되는가 싶었지만 실로 천우신조로 U47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 구축함이 갑자기 진로를 바꾸었던 것이다. 

이 대담무쌍한 작전은 결국 성공했다. 돌아오는 길에 U47의 내부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이 가운데 선임장교인 엔트라스대위는 이 전과를 기념하기 위해 U47의 휘장을 제정하자는 안을 냈다. 곧바로 권터프린의 'Draufganger(무모한 사나이)'라는 별명에 맞게 만화디자인이 그려졌고 이 그림은 이후 U47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귀환중 U47의 승무원들은 BBC방송으로 부터 독일의 U보트로 보이는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로열오크가 격침되고 영국군들은 그 U보트를 격침시켰다는 방송을 청취했다. 한편 독일해군 총사령부에서는 라디오를 통해 로열오크를 격침시키고 레펄즈를 대파했다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전과를 올린 U47의 함장인 권터프린의 이름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프린은 귀환하기 전부터 이미 독일국민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눈부신 전과를 올리고 키일군항으로 귀환한 권터 프린과 U47을 기다리고 있던것은 되니츠뿐만이 아니었다. 해군 총사령관인 에리히 레더제독도 함께했고 되니츠와 레더는 모두 함께 U47의 승무원들과 악수를 교환했다. 

최대의 수훈을 세운 권터 프린에게는 1급 철십자장이 수여되었고 다른 모든 승무원들에게는 2급 철십자장이 수여되었다. 이와함께 이 작전을 계획한 되니츠는 해군소장으로 승진, 정식으로 잠수함부대의 사령관직에 임명되었다. 

오후에는 프린과 U47의 승무원 전원이 히틀러의 총통관저로 가서 히틀러의 영접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히틀러는 프린에게 기사철십자장을 수여했다. 

독일 해군에게는 멋진 복수를, 영국 해군에게는 치욕을 안겨준 스카퍼플로우는 그뒤로 5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방어망정비가 실시되었다. 물론 영국군도 다시는 스카퍼플로우로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겠지만 독일군도 두번다시 스카퍼플로우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제 독일군은 스카퍼플로우 작전이후 전통적인 U보트 작전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상선파괴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2002년 02월20일 제ss기갑사단장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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