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2미사일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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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이후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장거리포 개발을 금지당한 독일은 그 대체품으로서 로켓에 눈을 돌렸다. 이러한 로켓은 소련의 카츄사 로켓포같은 야전 포병병기 뿐만 아니라 장거리 액체 로켓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 1932년에 이미 액체산소외 알콜을 이용한 A-1 로켓이 만들어 졌다. 여기서 A는 집합체를 의미한다. 1934년에는 A-2가 만들어 졌으며 보르쿠섬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이성공에 독일군에서도 개발을 위해 인력과 자금을 지원 1936년에 육군과 공군 연구소를 설립 하였다. 1937년에는 전장 7.6m, 동체직경 75cm, 중량 750kg, 자이로 스코프에 의한 자세제어가 가능한 A-3제작되어 그해말 시험 발사에 성공 하였다 그결과로 군용 로켓 장래성이 인정되어 실용탄두 2t과 유도 시스템을 갖춘 13.6t의 전투용 로켓인 A-4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A-4도 액체산소와 알콜을 이용한 액체연료 로켓으로 70초동안 연소되면서 탄도의 정점에 달하면 엔진이 정지 자세를 변경하여 목표를 향해 낙하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실용화에는 좀처럼 이르지 못하고 각종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었다. 그러는 동안 A-5 로켓의 시험도 실시되었다.A-4 로켓은 발터 틸 박사의 디자인에 대추력 로켓을 장비한 획기적인 물건이었지만 개발순위는 뒤로 밀렸고 이 로켓은 독일 선진기술자랑할 수 있는 물건이긴 해도 이 로켓 없어도 전쟁은 바로 승리로 끝날 것 같은 분위기가 계속 되었다.하지만 독소전 개전이후 전쟁이 장기화되자 A-4의 완성에 다시금 눈을 돌렸고 1942년 6월 결국 A-4가 완성되어 시험을 개시되었다. 하지만 1,2차 시험에서는 이륙에 실패하여 폭발하고 말았고 10월3일 테스트에서는 이륙에 성공하여 190km를 날아올랐다. 물론 이 성공이 바로 실전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히틀러는 [런던을 폭격할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양산을 승인한다. 한편 공군에서도 뒤에 V1로켓이 되는 Fi103 비행폭탄의 개발이 진행되었고 1943년 1월 A-4틀별 위원회가 설치되어 월 900발의 생산목표로 계획이 추진 하였다. 그리고 1943년 5월 히틀러가 A-4의 실전화에 최우선권을 주어 Fi103과 Me262제트 전투기와 동순위로 개발 우선권이 주어졌다 그동안 이미 만들어 두었던 공장과 발사시설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공장은 미텐베르케사가 노르트하우젠에 지하공장을 신설하였다. 연료저장용 동굴도 함께 설치된 이 거대한 지하공장에서는 V1로켓과 타이푼 로켓탄등도 함께 생산되었다.
[옆사진은 노르트하우젠에 지하공장에서 미군에 압수된 제작중인 A-4로켓]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하고 내륙으로 진격하자 히틀러는 1944년 9월 V1에 이어서 A-4로켓을 집중적으로 발사하도록 명령하였다.A-4 로켓의 주기관은 알콜(A제)과 액체산소(B제)추진체로 하고 있으며 A제 4173kg, B제 5533kg을 각각의 탱크에 주입하였다. A-4로켓의 엔진은 추력 25t, 68초동안 연소되며 약 3t의 무게의 A-4는 97km까지 상승하여 300km앞의 목표물에 2900km/h의 속도로 돌입하였다.1944년 9월 8일 런던에 A-4로켓의 제1발이 명중했다. 영국군은 이 당시 가스 폭발이라 발표하여 주민들의 공포를 무마시켰지만 마하 4의 속도로 계속해서 날라오는 A-4로켓에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A-4는 약 20kmX30km의 지점에 낙하했으며 주민들은 언제 로켓탄의 세례를 받을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1944년 말까지 447발이 런던에 떨어졌으며 대전말기까지 9000여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하지만 런던보다 인트워프항에 발사된 로켓이 더 많아서 A-4가 924발이 인터원프항을 향하여 발사되었다. 이것은 인트워프항이 연합군의 최중요 보급기지 였기 때문이다.그밖에 유럽 각 지역에 10여개 도시에 A-4로켓이 발사되었으며 전쟁 종결시까지 영국의 런던에 1151발, 안트워프에는 1341발, 브뤼셀에 65발, 뤼즈에 98발, 파리에 15발등이 발사되었고 대전말기 유명한 레마겜 철교공방전에서는 레마겐 철교를 향해 11발이 발사되었다고 한다.
[옆 사진은 발사대기중인 A-4와 발사된 A-4]한편 A-4로켓은 고정식 발사대가 연일 연합군의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뒤에는 이동식 발사대가 고안되었다. 이 이동식 발사대는 이동시에는 로켓을 수평으로 놓은 상태로 이동시키고 발사시에는 그대로 세워 발사할 수 있었다. 이 이동식 발사대는 한나절정도의 준비를 거쳐 발사한 뒤 1시간 내에 발사흔적을 완전히 없앨수가 있었다.히틀러가 어느 국가의 국민이라도 A-4의 지속적인 공격 앞에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듯이 제2차대전의 시점에는 A-4로켓은 상식을 뛰어넘은 획기적인 병기였다. 한편 V2로켓이라는 명칭은 독일군내에서는 일체 사용된 일이 없으며 독일군은 항상 이 로켓을 A-4로 불렀다. V2라는 명칭은 보복병기 1호라는 V1로켓의 이름을 참조하여 연합군이 부르던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독일군은 A-4로켓 이외에도 A-5부터 A-10 로켓까지 다양한 로켓을 연구했다. A-6은 A-4의 연료를 개량한 것으로 설계만으로 끝났고 A-7은 A-5의 유익형, A-8은 A-6의 연료 시스템 개량형이었다. A-9는 경량화한 A-4b에 A-6의 동력시스템을 결합시킨 것으로 싸게 생산 가능한 A-4에 밀려 양산되지 못했다. A-9는 부스터 역할을 하는 A-10에 결합하여 미본토 공격용으로 계획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XXX XXX
2001년 11월20일 하정훈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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