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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남전쟁)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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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바라본 한구군의 중대전술기지. 이런 기지는 작전지역의 지형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개념은 똑같았다.그림을 참조하면 이해가 쉽겠지만 가운데의 중대본부를 중심으로 적정을 관찰할수있는대 관망대, 중화기 진지(박격포,무반동총,중기관총등,)기관총 진지,개인호등을 원형으로 배치해 사방을 방어하고 3중의 철조망을 통해 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다.

XXX XXX



 

▲옷을 입을 새도 없이 달려나와 총열이 닿아 버릴 정도로 탄우를 퍼붓는 Cal.30경기관총 사수 초기 파월 한국군의 화기는 이처럼 모두 한국전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군이 전술적으로 남베트남군이나 미군과 다른점이 있다면 바로 '중대전술기지' 를 운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탐색-섬멸전략'(Search and Destroy Strategy)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적을 찾아네 섬멸하는것으로 미군의 장점인 기동력과 물량공세를 앞세운 작전개념이었다.적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대대나 연대규모의 전술기지를 구축해 그것을 발판으로 장거리 정찰과 수색을 통해 적을 찾아낸뒤 기동타격 부대로 하여금 섬멸한다는 것이 이전술의 개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도 드러났듯이 베트남전에서의 이런 전투방식은 맞지 않은 것이었다.


알다시피 베트남전은 양민과 베트콩의 구별이 모호한데다가 누구라도 베트콩이 될 수있었음은 물론이고,설사 적을 찾아섬멸했다 하더라도 그지역에 또 새로운 게릴라가 만들어지는 것이 특징이었기 때문에 에초에 베트콩을 찾아내가며 전투를 한다는 방식은 무리였다.

반 면 한 국 군 의 중 대 전 술 기 지 는 200~300m크기의 원형구조에 이중참호 를 파고 가장 외곽에는 2~3중의 철조망과 네이팜탄,조명지뢰와 크레모아등을 설치, 최소 3일 분량의 식량과 탄약을 비 축해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 48시간이상 지탱할 수 있게 설계된 곳이다.

이런 기지는 반드시 아군 표병의 지원거리내에 국축해 소규모 공격은 중대자체화력으로 섬멸해 버리고 대큐모 인해전술에 대해서는 아군 포병의 지원을통해 적 의 허리를 끊어 후속부대를 차단하고 나 머지에 대해서는 중대의 전 화력을 동원한 화망으로 제압하는 방어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각 기지는 사방 10Km범위를 통제권에 두었는데,특히 각 기지와 기지 사이에는 야간매복조와 수색대를 배치,서로연결해베트남전역에 약 700평방 킬로미터라는 광대한 지역을 평정할 수있었다.

아울러 이런 중대전술기지는 그 자체를 모든 작전행동과 대민지원의 거점으로 사용했는데, 실제로 초기 한국군

맹호부대전술책임 지역에는 불과 15만명 정도의 양민이 있었으나, '한국군 지역에 있으면 베트콩의 침입없이 편하게 살 수있다'라는 소문이 퍼지며 불과 반년여만에 120만명으로 열배애가까운 증가를 보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끊임없이 '머릿수도 딸리는 한국군이 갈가리 찢겨 중대규모로 기지를 구축하면 단번에 전멸하고 만다' 며 자신들과 같이 대대나 연대규모의 기지를 구축할 것을 종용했는데,66년에 벌어진[둑코전투]와[짜빈동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성공사례를 통해 결국 미군도 이전술에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한국군의 중대 전술기지는 모택동의 게릴라전 원리를 역이용한 것으로, 물(주민)에서 물고기(게릴라)를 분리시키기위해 지역민간인 보호에 70%의 노력을 기울여 게릴라를 차단하고 군사작전에는 30%의힘만 들인다는 것이다. 이런방식은 이미 한국전쟁 당시에 대 빨치산 작전에서 태동된 전술로 한국군에게 는 아주 익숙한 전술이었다.


둑코전투

이런 중대전술기지의 운영은 미군으로 부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는 비아냥을 받아야 했는데,이런 미군의 시각을 일거에 바꿔 버리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1966년8월9,10일 양일간에 걸쳐벌어진 둑코전투가 그것이다.

남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국경지대인 둑코는 이른바[호치민루트]라 불리우는 보급로와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로 베트남의 고산원시부족인[몬타냐드]족이살고있는 원시정글지대다.

이곳은 원래 미 제1야전군 산하의 제1공중기갑사단과 제25보병사단이 투입되어 '링컨작전'과 '펄-리비어'작전이라는이름으로 베트민군에 대한 공세를 폈으나 여전히 베트민군의 영향력을 없애지 못하 고있던곳이다.

미군은 이에 한국군의 증원을 요청하는데, 당시 한국군은 맹호부대 증파부대인 제26연대가도착해 병력에 다소간의 여유가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원래 빈케에 주둔하고 있던 제 1기갑연대 제3대대와 제9대대,제12중대, 미 제 69전차대대를 현지에 파견하고 한 미 양군으로 구성된 지원부대를 배속시켰는데, 트럭 187대에 분승한 그들의 행렬이 50km에 달했다고 한다.

목표지점에 산개해 중대전술기지를 구축 하고 전개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베트콩 정규군 제308사단 제88연대 제 5대대인'둥바이 대대' 700여명이었다.

부대는 전개후 미 제 3여단장인 워커준장의 지시에 따라 한달여간 수백회의 수색과 매복을 반복하며 적의 동태를 살피던 중 마침내 8월8일 밤부터 수상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색작전에서의 적의 흔적들이 발견되는가 하면 매설해 놓은 조명지뢰가 터지기도 했으나 마침 임무 인수인계중이던 중대장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이런 보고를 묵살해 버렸다.

그러나 갑자기 곳곳에서 적의 흔적이나 움직임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더니만 마침내 밤 10시 57분을 기해 중대기지안으로 적의 박격포탄이 작렬하기 시작 했다.

병력의 절반정도가 잠을 자고 있다가 당한 공격이라 기지안은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야전침대를 들섯이게 하는 포탄의 충격파에 잠이깬 병사들은 옷을 입을새도 없이 팬티차림에 군장을 걸치고 뛰쳐 나와야만 했다.

우박이 퍼붓듯 쏟아지는 박격포탄이 기지내로 무수히 쏟아졌지만 주요시설부분과 취침호가 모두 모래주머니로

보강된 지붕이 덮혀있는 유개호로 만들어진 덕에 피 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지휘소로 덜어진 포탄이 신구중대장 일행을 덮쳐 신임중대장인 강세호 대위가 심한 파편상을 입고 말았다.

10여분간 170여발의 박격포탄이 한바탕 기지를 휩쓸고 지나가자 그동안 침묵하던 미군의 전차들과 아군의 모든 중화기 진 지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싸울 수 있는 중대원들은 모두 나서라. 중대장이하 모든 병력은 육탄전을 대비하고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라!"중대장 이춘근 대위의 독전아래 곳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중화기중대의 제1소대 이종세 중사는 소대장이 부상당하자 전원 착검을 명령하고 수류탄을 확보하는 한편, 적을 코앞가지 유도한뒤 일발필중할 것을 강조하며 병력을 지휘했다. 그들 소대는 전원이 마치 한몸인양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고, 기관총 자동소총소총수가 완벽한 팀웍을 발휘해 집중적인 화망을 구성한 덕에 다섯차례가 넘는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격퇴시켰다.

그들이 방어한 지역에는 적이 아군을 철조망을 한번도 넘어보지 못했고, 간간이 철조망을 넘으려는 베트콩은 격투능력이 뛰어난 박오택 상병이 달려나가 대검으로 도륙을 해버렸다.

아울러 중대관측장교인 한광덕 중위는 비오듯 퍼풋는 적의 포사격을 막아내기위해 산개해있는 아군을 포사격을 효과적으로 유도,수십번의 위기를 정교한 포격으로 넘기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펼첬다.

이 전투로 신임중대장인 강세호 대위는 전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나는 먼저간다,꼭 이겨야한다"며 숨을 거둬 부임사흘만에 순직한 것과 함께 아군6명이 전사했고 46명이 부상한 것에 비해 적사살 184명, 포로 6명,적 유기시체및 부상자포함 약500여명의 사상이라는 놀라운 전과를 거두어 적병력을 완전 궤멸시킨것은 물론이고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의실효성을 톡톡히 선보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미군은 이전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를FIREBASE(화력거점)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 전술적 운용과 효과를 연구하게 된다.






2002년 10월08일 LenA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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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GIRA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토 스코르체니] 중간에 글자크기가 너무... ㅡㅡ;;; (10월08일)
[Franken] 중간에 기지 도면 그린거.. 그 끈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마우스를 움직여서 저만큼 그리려면 손놀림이 아주 좋아야 하지요.. (경험임) 레나님 정말 수고하셨어요.. (10월08일)
[LenA] 중간애 태그를 썻는대 저러케이상할줄..흐미 (10월09일)
[LenA] 프랑켄님 감사~~ (10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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