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ss부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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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친위대)의 초기역사는 히틀러가 Stabswache(Headquarters Guard)를 창설한 2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장단체는 23년 11월 9일 히틀러와 나치당이 바이마르Weimar공화국이 혼란한 틈을 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주도한 뮌헨 비어 홀Munich Beer Hall폭동의 실패로 해산되었지만, 25년 히틀러의 출소와 동시에 재건된 나치당과 함께 소규모의 Stabswache(곧 Schutzstaffel로 바뀜)도 다시 재규합되기 시작했다.(역설적으로 비어 홀 폭동의 실패는 히틀러로 하여금 합법적-국민의 지지-으로 정권을 획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폭동의 실패로 히틀러는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인물로 부상했으며, 재판과정에서 그가 보인 의연한 태도-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함.-와 자신에 대한 훌륭한 변호는 대중 선동, 정치가로서의 히틀러의 면모를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 후 이 조직은 히틀러의 직접적 영향력하에서 독일 각지에 조직Staffel을 확산하기 시작했는데 이 SS 조직은 본적으로 나치당 수뇌부 경호, 대중집회시의 질서유지, 나치당 강령의 선전 등에 활용되었다. 그러므로 에른스트 룀Ernst Rohm이 지휘하는 돌격대 Sturmabteilungen/SA와는 달리 SS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준군사조직Paramilitaty organization의 파생물이아니라 기본적으로 당의 필요에 의해서 조직된 무장단체였다.(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은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국방군-라이히베르Reichwehr-의 규모가 축소되었기 때문에 국방군의 상당수의 군인과 장비가 이런 준군사 조직으로 흘러들었다.)SS의 성장은 29년 1월 6일 29세의 히믈러가 SS의 총책임자로 임명됨과 동시에 가속화되었다.
따라서 29년 초 불과 수백명에 불과하던 SS대원수는 급격히 증가하여 32년 12월엔 52,000명, 33년 말경엔 209,000명까지 달하였고, 동시에 SS의 활동영역도 급속히 팽창일로를 걷기 시작하였다. 즉, 30년 베를린 SA조직의 반란을 분쇄함과 아울러 다음해 SS조직내에 Ic-Dienst라 불리는 자체 첩보기관을 설립한 SS는 나치당내 경찰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초월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31년 SS-인종 및 이주국 SS-Race And Settlement Office(SS-Rasse und Siedlungsamt)의 설립은 SS로 하여금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이념적 전위부대avant garde의 역할을 가능하게 하였다.
SS는 일반-SS(General-SS, Allgemeine-SS)와 무장-SS(Armed-SS, Waffen-SS)로 나누어졌다. 일반-SS의 조직은
군대 조직과 부분적으로 종교조직, 특히 수도원의 명령체계에 근거했는데 각각의 대원들은 국방군과는 다른 특별한 계급을 부여 받았다. 히틀러는 광적인 인종주의자로서 독일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완벽한 신체(힌 피부, 신장 180cm이상 등)와 순수한 혈통(게르만 족)을 가진 사람만을 대원으로 뽑았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후보자들은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엄숙한 게르만적인 의식을 통해 정식대원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윤기나는 검은 제복과 독특한 휘장(번갯불처럼 형상화한 고대 게르만족 문자인 룬문자 S와 해골배지, 단검)을 착용했는데 이런 선발조건과 입단의식, 제복들은 SS대원들로 하여금 선택된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타민족에 대한 대량학살을 정당화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SS대원들은 다른 인종을 증오하고 인간의 고통에 무감각 하도록 교육받았으며, 가장 중요한 덕목은 히틀러에 대한 절대 복종과 충성이었으며 히틀러는 대원들에게 "충성이야말로 그대의 명예이다."라는 좌우명을 제시하였다.
2001년 11월26일 멍텅구리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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