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전차전력-돌하룰방
페이지 정보
본문
밑에서 일본군이 저렇게 약한 전면장갑을 가진 전차들로 어떻게 전차전력을 유지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내신분들이 있어서 몇자 적습니다.
먼저 일본군의 최초의 전차도입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전차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는데 대해서 이런건 사무라이정신에 어긋난다는 어이없는 반론까지 있을정도였죠.
하지만 1차대전에서 전차가 사용된이후 세계의 군사강국의 추세에서 일본만 뒤떨어질순 없는 노릇이라 여러시행착오끝에 최초의 제식전차로 89식전차가 채용됩니다.(여기나오는 전차들이 대부분 4호전차님이 올리신 사진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비교적 당시시대기준으로 괜찮은 성능을 보유했지만 월2~5대생산량이라는 소수생산으로 수를 감당하기 힘들어 보조차량성격의 92식과 94식장갑차가 배치됩니다.(1937년에는 97식장갑차가 배치)
하지만 대전차병기가 부족한 중국군과의 상대에서는 그럭저럭괜찮은 효율을 보였지만 이런류의 장갑차는 미군에 대한 상대로서는 역부족을 보입니다.
한편 저런 전차의 보조전력성격의 장갑차들을 대치하기 위해 95식경전차가 배치되어 이들을 교체해나갑니다.
2300여대의 많은 생산량(일본기준으로)을 보이지만 주포인 37미리포는 최후기형이 500미터거리에서 25미리강판을 관통가능한 정도의 전력이라 미군의 스튜어트경전차를 상대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거기다 방어력은 7.7미리구경의 철갑탄을 겨우 방어가능한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의 주력전차급으로 97식중전차가 있습니다.
이차량은 중국군이 독일제 37미리대전차포를 장비한다는 소식에(아마도 추축동맹이 맺어지기전의 일로 짐작됩니다.) 89식 중전차보다 발전된 차량을 가질 필요성에 따라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차역시 화력,방어력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는데
주포인 57미리포는 스튜어트경전차의 전면장갑도 관통불가능,측면에서 100미터이내에서 겨우 장갑을 약간 갈라지게 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전면장갑은 37미리포의 방어라는 목적으로 25미리가 채용되었는데(일본전차로는 많은 발전입니다.)문제는 이게 위력이 독일이나 미국제 대전차포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자국산을 기준으로 해서 실제 독일제 37미리포로 500미터거리에서 관통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97식 중전차 개(改)형입니다.(4호전차님이 올리신 97식 전차중 97 Improved Medium Tank입니다.)
이전차는 48구경장 47미리포를 채용,1000미터 사거리에서 30미리의 관통력을 보였는데 이걸로 이제 스튜어트전차를 간신히 상대할 수 있었습니다.(포지름이 작은 47미리포가 57미리포보다 관통력이 강한 이유는 구경장이 더 길어졌기때문입니다.원래 97식중전차의 57미리포는 18구경장이었습니다.)
그외 독일이 만든 비밀병기처럼 본토결전용으로 말기 본국에 배치한 일부 중전차들과 기타경전차가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일본의 전차전력은 2차대전중 최약체라 할만햇습니다.
유럽전선에서 독일의 티이거와 판터의 밥신세로 전락한 셔먼전차가 태평양에서는 거의 쾨니히스티이거의 위치와 맞먹는 위치였으니까요.
사실 이런 부분은 섬나라인 일본이 지상전전력보다 해군전력에 치중하는 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일본군전체를 지배한 비효율적인 반자이정신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002년1월23일 작성한 돌하루방님이 작성한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totalmilitary.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