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요새 테르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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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노플은 동유럽에서 흔히 볼수 있는 중소규모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철도가 집결하는 요충지이기는 했지만 독일군의 주둔지였을뿐 요새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44년 초부터 시작된 소련의 대공세에 의해서 독일군이 밀리기 시작하자 테르노플이 전장이 되어버렸죠. 근데 이도시가 점령 당하면 독일군은 루마니아를 둘러서 보급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도 히틀러는 군대들이 집결하고 휴식을 취할 시간을 주고 위해서 이 테르노플을 스탈린그라드로 만들 것 을 명합니다.
결국 증원도 하지 말고 그 도시에서 후퇴도 하지 않은채 수비군이 전원 전사를 하면서 버티게 하여 시간을 벌게 하려는 술책이었죠.
3월 7일 소련군이 도시에 진입을 시도했지만 수비대는 돌격포와 대전차포로 역습을 하여 격퇴합니다. 그러나 겁에질린 군의관들과 시민들이 퇴각할 때 의약품을 모두 들고 철수 하는 바람에 수비군은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간과한 것은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들은 최정예이고 몸을 숨길 곳이 있었지만 테르노플의 수비대들은 제대로 된 군대가 아니었고 18세 이상 50세 이하의 의용군이었습니다.
탄약도 모자랐고 대전차포도 37MM까지 합해서 15문이 있었고 대공포로는 20MM짜리 3문, 88MM포 4문이 고작이었으나 앞서 말했듯이 탄약이 부족했습니다.
이도시의 수비군지휘관 나인도르프는 이 도시 수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총통의 엄명에 따라 지키기로 하고 도시를 동서남북 4구역으로 나눈채 병력을 배치하고 대전차포가 뒤를 받히고 있었습니다.
3월 23일~24일까지 소련의 대규모 공격은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독일군은 제 4기갑사단을 앞세워 보급품을 전달하려 하고 프라에베를 사령관에 임명하지만 소련군의 역습에 부딪혀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리고 소련군이 증원군을 차단하기 위한 방어선까지 건설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프라에베는 포위를 면하고 전멸을 피하기 위해 동료들의 절규를 뒤로하고 테르노플 4KM지점에서 후퇴한다.
총 4,600명의 수비대는 소련군의 공격을 놀라운 투혼으로 물리치지만 탄약이 매우 부족했다. 결국 소련군의 정찰병에게까지 사격이 금지되기에 까지 이른다. 3월 28일 집중포격끝에 T-34의 지원을 받은 보병 1개 사단이 남동쪽을 공략하기 시작하고 949연대의 어린 병사들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결국 주 저항선은 도시 바로 앞까지 밀렸다. 그러는 와중에 테르노플의 모든 병사들은 독일의 정예 병사가 되어 있었다.
주코프는 5,000명도 안되는 작은 도시에 4개 보병사단이 묶여 있다는 사실에 점점 초조해졌다. 집중 포격도 해보고 체르카 시에서 처럼 심리전을 이용하기 위해 독일군을 설득하기 위한 포로들까지 보냈지만 그 포로들도 수비군에 합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련군에 항복하면 어떤 대우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든 병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3월 31일 기차역이 점령 당하여 방어선은 1.5KM까지 줄어들었다. 독일공군은 조금이라도 더 버티게 하기 위해 전투기 호위 없이 폭격기와 수송선을 이용해 탄약을 우송했지만 90개의 컨테이너중 5개만이 독일군에게 회수되었다. 게다가 수백명의 부상병들은 군의관들이 도망가면서 의약품을 다 가지고 갔기 때문에 치료도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4월 4일 850명의 중상자들은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4월 8일에는 몇명의 조종사가 수송용 글라이더를 타고 치열한 탄막을 뚫으며 놀라운 투혼 끝에 착륙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 들은 다시는 독일땅을 밟지 못했다.
4월 11일 48군단의 지휘하에 구출작전이 시작된다. 암호명은 우리보다 나은 병사는 없다 였습니다. 두번째 구원군은 프라에베가 이끄는 9기갑사단이 주축이었다. 이번에는 진흙탕이 가로막았고 소련군의 대전차포도 그들을 환영해 주었다. 한편 테르노플에서는 살아남은 병사들을 서쪽으로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4월 14일 프라에베의 71대의 전차와 27대의 돌격포가 강을 건넜으나 소련군의 증원된 부대들이 뜨거운 총알 비를 퍼부어 주었다. 15일 증원부대가 올때까지 전선은 고착되었고 테르노플의 병사들을 구할 수 있는 여유시간은 몇시간으로 줄어버렸다. 모델원수가 직접 구출부대에 나타났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고 공군의 보급품은 제때에 오지 않았다. 16일까지 74대의 소련전차와 24문의 대전차포 84문의 야포를 부순 그들도 1,200명이 부상및 전사 18대의 전차를 잃었고 이상태로 11KM를 2일안에 돌파한다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동료들의 절규를 등뒤로 돌리고 후퇴하는 길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 초췌한 모습의 독일군 한명이 그들앞에 나타난다. 테르노플 수비군이 전멸한 것이다.
프라에베의 구원군이 오기전 4월 13일 밤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1대의 전차와 2대의 돌격포가 후위수비를 위해 남겨지고 1,300명의 수비대는 자그로벨라에 이동하였다. 수비대는 소련군의 포격안에 하나둘씩 쓰러져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그들은 마지막으로 돌격전을 시도한다. 소련군의 최초 참호는 총검으로 싸운 끝에 돌파했지만 그 뒤는 평야였다. 결국 평야에서 노출된채 각정 화기의 사격을 받고 그 와중에 나인도르프도 전사한다.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아 증원군에 도착한 테르노플 수비군은 55명이었다.
2002년 01월06일 운영자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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