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사(2)-영국 전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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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전투는 1940년 독일군이 영국본토 내 비행장과 레이더기지를 일제히 기습공격함으로써 개시되었다. 이날 강습받은 레이더기지 가운데는 극심한 피해를 입고 그후 열흘동안이나 사용불능 상태가
된 기지도 있었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피해사실을 감쪽같이 숨기고 독일측도 그런 뚜렷한 전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일주일간 실시한 제 1단계 작전에서 독일군은 레이더 기지에 대한 폭격이 별 효과가 없다고 평가하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15일에는 독공군이 전투기와 폭격기 총 1천 786대를 동원해 전례 없는 최대 규모의 공중전을 전개했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34대, 독일군은 75대의 항공기를 잃었다. 특히 영공군을 과소평가하고 북해상공을 유유히 비행하던 독일 제5전대 소속 항공기들은 불의의 기습공격을 받고 육지지역으로 가기도 전에 모두 격멸 되었다. 제1단계작전에서 쌍방의 피해는 막심 했으나, 특히 독일은 영국에 비해 두 배 이상의 항공기를 상실했다.
오만하기 짝이 없었던 괴링은 영공군이 보유한 잔여 전투기의 숫자가 3백대에 불과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영국군은 그 두배가 넘는 숫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괴링의 전략은 동남지역 주요기지를 집중 공격함으로써 영전투기를 그곳에 유인, 섬멸하려는 것이었다.
영국군 전투기 사령부는 그러한 독일군의 전략을 간파하고 가급적 독일 전투기와의 대결을 피한 채 독일 폭격기 만을 집중 공격했다. 이렇게 되자 독일 전투기들에게는 폭격기를 엄호해야 할 새로운 임무가 추가되고 그들의 본래 임무인 공격전을 감행할 겨를이 없게 되었다.
독일군의 엄호 전투기는 통상 폭격기보다 1천 5백~3천m상공에서 엄호했는데, 영국공군은 이 허점을 잘 이용했다. 영국전투기 일부로 하여금 독일의 엄호전투기를 견제하도록 하고, 그 동안 다른 전투기가 독일폭격기를 집중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8월 24일 제2단계 작전을 개시하면서 독일군은 새로운 전술을 이용했다. 그들은 공격목표를 해안기지로부터 내륙 항공기지로 전환하는 한편 엄호전투기의 고도를 낮추어 비행시켰다.
독공군은 영국전투에서 처음으로 우세한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영국의 대공방어체제를 흔들었고, 전투손실의 격차도 급격히 좁혔다. 8월 31일 이후 일주일 동안 독일측 손실은 전투기 및 폭격기 도합 225대였으며, 영국군도 180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이 기간 중 영국군은 매주 조종사를 평균 10% 이상씩 잃었으며, 연일 계속되는 격전으로 사태는 점차 악화되어 갔다. 9월 초순에는 독공군이 마침내 제공권을 장악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영공군은 많은 비행 중대를 템스 강 후방 기지로 철수 시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괴링은 주공격 목표를 런던으로 전환하고 영공군기지에 대한 공격을 중단시켰다. 그덕분에 영국 전투기 사령부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9월 7일 오후 5시가 조금 지나자 약 6백 대의 전투기 엄호하에 3백대가 넘는 독일 폭격기가 런던을 대거 급습, 시가지에 무자비한 폭격을 가하고 밤새도록 공격함으로써 런던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것은 새로운 목표를 겨냥한 제3단계 작전의 개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폐허가 된 런던 시가에는 306구의 민간인 시체와 1천 337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이와 같이 독일이 공격목표를 변경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그들의 군사적 오판이었다. 즉, 독일군은 영국공군이 파멸 일보 직전의 상태에 처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 대신 그들은 시 라이언 작전을 최종적으로 결심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게 되었다. 9월 초가 되자 상륙작전을 위해 해협 지역에는 예인선 및 화물운반선 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는데, 독일공군은 아직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히 초조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런던을 공습하면 영국측이 잔여전투기를 총 동원해 대항해올 것으로 보고, 그때 결전을 실시해 승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무차별 폭격으로 공포감을 조성, 영국인들의 전의를 꺾겠다는계산도 깔려 있었다.
둘째, 히틀러가 런던 폭격을 지시한 데는 또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본래 8월 24일 밤 독공군이 불의의 사고로 런던을 폭격한 사실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영국이 베를린을 공습한 일이 있었다. 이에 격노한 히틀러는 재보복하기 위해 런던 폭격을 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9월 7일 대공습 이후 일주일간 독일군은 주야간폭격을 계속했다. 이 기간 중 영공군의 저항은 의외로 산발적이어서 독일군은 영국군이 거의 붕괴했다고 착각했다. 괴링의 연승보고에 도취한 히틀러도 드디어 9월17일 시 라이언 작전을 감행하려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9월 15일은 독일공군에게 "암흑의 날"이 되었다. 이날은 청명한 날씨인데다가 양동작전 없이 독일 폭격기들이 해협을 횡단, 런던 상공을 향해 다가오자 그 동안 대기상태의 영전투기들이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대거 출격함으로써 큰 격전이 벌어졌다. 이날 전투에서 독일폭격기들은 폭격 목표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두 격퇴되었다.
폭격기 대부분이 기체와 양날개에 수많은 탄환구멍이 생겨 마치 벌집과 같이 엉망이됐으며, 기내에는 시체가 뒹굴었다. 독일은 이날 60대 이상의 폭격기를잃는 참패를 기록했다.
그날을 영국인들은 "영국 전투의 날"로 정하고 경축하기에 이르렀다. 약 3개월간에 걸친 영국전투에서 영국군은 총 사상자 449명이란 경미한 피해만으로 히틀러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2차대전 초기연전연승하던 독일은 영국상공에서 최초로 좌절의 고배를 마시고 영국침공 계획을 거두어 버린 것이다. 영국 전투에서 독일군은 1천 733대, 영국군은 915대의 항공기를 각각 잃었다.
~계속됩니다...(넘...길죠!)
2001년 11월09일 2차대전사 운영자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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