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FT-17 전차에 대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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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국의 동부 철도선의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서
소련군은 32기의 항공기와 3량의 장갑열차, 그리고 9대의 T-18 전차의 지원을 받는
6,091명의 보병과 1,599명의 기병대를 출동시킵니다.
소련으로서도 중국과의 충돌이 당시로서는 그들의 최신형(?) 전차
T-18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여기에 질세라 12,000-16,000명의 보병을 요새에 배치시키고
귀염둥이 르노 전차를 동북부 전선으로 투입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국군의 르노 FT-17 전차와
소련군의 T-18 전차가 정면으로 맞붙는,
꼬마탱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차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개석이 양보하고 열강들이 간섭하면서
1929년 가을의 무력충돌은 싱겁게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소련군의 공식적인 피해는 사망자 165명, 부상자 665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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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국군 소속의 르노 FT-17 전차들의 일부는
1931년 만주사변이 시작되면서 관동군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일본 육군은 추가로 상당수의 르노 전차를 발주하였고
자기들 방식대로 79식 전차, 일명 <고가타>라고 부르면서
1940년까지 그럭저럭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료가'를 'P쨩'이라고 제멋대로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어쨋든 똑같은 외양이지만, 얘네들은 웬지 덜 이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흥... 반드시 해적판이라서 그럴까요?
한편 르노 FT-17의 오리지날 저작권자인 프랑스 군대 역시
그들의 아시아 식민지의 거점도시인 사이공과 하노이에
각각 르노 전차를 주둔시키고 있었습니다.
사이공에 주둔하였던 르노 FT-17 전차부대는
일본의 위협이 가중되면서 1927년 상해의 프랑스 조차지로 전진배치됩니다.
이들은 상해 공방전 와중에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항복하였고
이후 만주국 소속으로 깃발을 바꿔달았다고 합니다.
반면 하노이에 있던 부대는 1945년까지 일본군과 줄기찬 접전을 벌이게 됩니다.
2001년 11월07일 메일박스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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