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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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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사 사진 및 영상자료 추가가 지속됩니다.

소드피쉬에 관한 작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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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2차대전에 일어난 가장 이상한 사건들 중의 하나인 헬렌 던컨의 마녀재판 소동은


참혹한 전쟁이 유발하는 공포와 슬픔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과 합리성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게 만들어 버린 예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출신인 헬렌 던컨(1897-1956)은 가난한 장롱 제작업자의 딸로 태어나


역시 같은 업종에 종사하던 남자를 만나서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1차대전에 참전하여 불구의 몸이 되면서 그녀의 빈곤한 생활은 더욱 가중됩니다.


헬렌 던컨은 평생 12번이나 임신하였으나, 6명의 아이들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6명의 자식과 남편을 부양하기 위하여 낮에는 허름한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강신술(Spiritualism)을 익히는 고된 삶이 이어지게 되었는데,


그녀는 언제부터인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일에 상당히 능숙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영매(Spiritual Medium)로서의 그녀의 재능은 사람들의 소문을 통해 날로 유명해졌고,


특히 2차대전이 발발하여 영국군의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전사자의 유가족과 병사의 유령을 연결해 주는 일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던컨 아줌마가 만들어낸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사건은


역시 잡담 (1)에서 잠시 소개되었던 영국전함 바아험에 얽힌 이야기일 것입니다.



 


1941년 겨울 포츠머스의 어느 교회에서 그녀는 평상시처럼 강신술 집회를 열었는데,


다음과 같은 사건이 목격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수병의 모습을 한 창백한 얼굴의 유령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그의 모자에는 전함 바아험을 의미하는 H.M.S. Barham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윽고 그 유령은 입을 열었다.    "우리의 배가 침몰하였다."


  


헬렌 던컨은 처음에는 경미한 사기죄로 기소되어


포츠머스 치안판사로부터 고작 25실링(5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성격이 대수롭지 않은 일반적인 사기죄가 아니라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전시 음모내통죄에 해당하는 중대범죄에 해당한다는 논란이 오가면서


헬렌 던컨의 운명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아험의 침몰 소식을 그동안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일급비밀사항으로 취급하였던 영국정부가


포츠머스에서 일어난 해괴한 귀신소동으로 발칵 뒤집혀졌기 때문입니다.



 


대영제국이 자랑하는 전함 바아험이 11월25일 지중해에서 유보트 331호가 쏜 어뢰에 의해 격침되어


승무원 가운데 865명이 전사하고, 494명이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비보는


온 영국 국민들을 슬픔과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당황한 영국정부는 던컨을 국가를 위협하는 독일의 스파이로 간주하고 사건의 재조사를 시작합니다.


흠... 그런데, 왜 이 대목에서 갑자기 마타하리의 이름이 떠오르는지 모르겠군요.



런던중앙형사법원(Old Bailey)의 재심리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이유는


저의 어설픈 추측에는 아마도 포츠머스 치안판사에게 받은 재판이


종국적인 절차로서의 형사재판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국의 복잡한 사법제도를 전혀 모른다는 저의 헛점이 여기서 들통....)  


 XXX XXX


헬렌 던컨의 마녀재판 소동은 몇년전 미국대륙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벌어진 오제이 심슨(O. J. Simpson)재판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본질은 딱히 중요한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에 걸쳐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진짜로 중요한 다른 사건들은 국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단 오제이 심슨 아저씨가 영화 <총알탄 사나이>에 주인공의 동료형사로 출연하여


역사상 최악의 연기를 보여 주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만족하지만 말입니다.  



다시 헬렌 던컨 사건으로 돌아가 본다면,


처음에는 던컨에게 스파이혐의를 적용하려 하였던 영국법원은 1944년이 접어들면서


엉뚱하게도 거의 수백년동안 잊혀져 왔던 1735 마녀법(1735 Witchcraft Act)조항을


먼지 자욱하고 케케묵은 문서창고로부터 세상 밖으로 다시 가져오게 됩니다.


 
 


재잘공명님께서 질문하신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일 것입니다.


조지 2세 시대에 제정된 1735 마녀법은 일단 그 시기 이전까지 마구잡이로 횡횡하던


극단적인 형태의 마녀사형 풍습을 종식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수 있지만,


기타 방법에 의해서 마법, 요술, 주술(Witchcraft, Sorcery, or Conjuration)을 실제로 행하거나


거짓으로 꾸민 자를 처벌한다는 조항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헬렌 던컨의 죄목 역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처럼 사람들을 기망하여


대중을 현혹시키고 공공의 안전을 해쳤다는 혐의가 적용되었습니다.



피고인 측에서는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별의별 희한한 증거들과 증인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헬렌 던컨은 혐의가 인정되어 할러웨이(Holloway) 감옥에서 9개월의 형을 살게 되었습니다.


(재판의 진행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 부분은 아마도 다음 기회로 넘겨야 겠습니다)


그리고, 재잘공명님께서 두번째로 질문을 주신 사항,


즉 재판에 대한 불복이 가능한지 여부는 마녀법의 규정 자체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마녀법 역시 다른 영국의 형법들과 마찬가지로


죄가 성립하는지 또는 불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작용하는 실체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무리 괴상망칙한 형법이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원칙에는 따라야 하므로


재판의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는 허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군사법원으로부터 재판을 받게 되는 때에 한정하여


피고인이 대법원에 다시 재판을 청구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사건이 종결된 지 50년이 넘은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헬렌 던컨의 지지자들은


그녀의 명예회복과 영국정부의 사과성명을 받기 위해서 각종 사회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강신교를 일반적인 종교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최근에는 페미니즘적인 색채도 아울러 띄고 있습니다.



던컨 아줌마의 구명운동(?)을 맹렬히 펼치고 있는 사람들이 사건 당시의 고위관료들 중에서


유독 윈스턴 처칠에게 호의를 표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a)  던컨 재판으로 세상이 소란스러워지자 처칠이 상당한 불쾌감을 나타내면서


    관료들에게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썼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법원에 재직하는 판사 어르신네들이 케케묵은 옛날시대의 1735 마녀법을


    수백년만에 다시 끄집어 낸 이유가 무엇인지 조사하여 나에게 보고하라.


    국가기관이 그런 시덥지 않은 바보짓이나 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다니 도무지 어이가 없다"

    

    그러나, 처칠은 특히 내무성 비밀 검찰국(Secret Service) 사람들의 강경한 입장에 눌려서


    재판의 진행을 결국 막지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XXX
      

     

(b) 2차대전를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면서 자만심에 빠졌던 처칠은 뜻하지 않게


   1945년의 선거에서 참패하지만, 1951년 다시 수상의 자리에 복귀하게 됩니다.


   재집권하자마자 그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여러가지 쓸모없는 법안들을 폐지하게 되는데,


   전도유망한(?) 마녀를 하루아침에 전과자 아줌마로 만들어 버렸던 마녀법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사기에 의한 영매 규제법(The Fraudulent Mediums Act)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예전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기소하였던 마법, 주술행위 또는 유사행위들이


   이제는 오로지 금전을 대가로 이루어졌을 경우에만 처벌받도록 내용이 완화된 것입니다.


   80년대 이후 7명이 이 법에 의해 사기혐의로 기소되어 6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법은 영매행위 자체를 국가가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습니다.


         

(c) 윈스턴 처칠 자신부터가 요상한 마법을 믿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별로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지기반을 넓히려는 영국의 강신교 신자들과


   흥미로운 기사거리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황색언론의 입장에서는 그렇치 않은 것 같습니다.

    

   처칠과 던컨이 실제로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배불뚝이 아저씨와 아줌마의 사이를 두고서 여러가지 이상한 루머들이 오가기는 합니다만,


   글쎄요... 기사의 제목만 보더라도 사자와 마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커플 아닐까요?

 

   이 부분은 2차대전보다는 오히려 빅토리아 시대나 보어전쟁과 관련성이 더 크기 때문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근대전사란에서 다루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재잘공명님이 주신 의문사항에 대해서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살펴 보았지만,


저 역시 당시의 판사들이 이미 오래 전에 깡그리 불태워 버렸어야 할 마녀법을


세상 밖으로 다시 끄집어 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무척 궁금하기만 합니다.



나치 독일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대부분의 군사작전을 극비리에 진행시켜야 했던


영국 관료들의 입장에서는 헬렌 던컨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포함하여


국가기관의 일급비밀을 마구 누설(?)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난처한 지경에 빠졌기 때문에


요상한 방법들을 동원해서라도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었다는 설명이 있으나,


이것은 오히려 던컨이 진짜 마녀였다는 주장에서 출발하는 의견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약간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헬렌 던컨이 마녀였는지 아니면 그냥 아줌마였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일생동안 괴이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만, 전함 바아험에 관련한 유령소동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몇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a) 그녀가 강신술 집회를 열던 장소가 다름아닌 영국해군의 본거지로 사용되던


    포츠머스(Portsmouth)였다는 점입니다.



 


(b) 전함 바아험이 유보트에게 격침되었다는 비보를 접한 영국정부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마침내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비록 편지에는 가까운 친지 이외에는 절대로 바아험의 침몰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내용이 강한 어조로 포함되어 있으나,


    정부로서는 유가족의 발설을 사전에 금지할만한 아무런 강제수단이 없습니다.


            XXX


결국 영국 수뇌부는 바아험의 비극에 대한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고 자신하였지만,


세상 밖으로 이야기가 흘러나갈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였던 것 같습니다.



포츠머스의 유령소동은 대충 그렇다 치더라도


그나저나 이 글의 본래 주인공은 도대체 언제쯤에나 나오는 것일까요?


사실은 바아험의 비극적인 폭침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침울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항공기가 다름아닌 소드피쉬 뇌격기이거든요.  


(흥.... 주인공을 계속 소외시킨 잘못에 대한 구차한 변명)


(3)으로 이어집니다.


행복하세요.


XXX


출처:www.defence.co.kr/shena (shena@kebi.com)



2001년 11월26일 메일박스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s://totalmilit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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